그냥 내 인도 이야기
내가 처음으로 인도에 가게 된 계기는 산업인력공단을 통한 해외취업을 통해서였다. 그중 인도의 Satyam이라는 IT 기업에 마케팅 부서의 인턴으로 5~6명 정도의 사람들이 보내졌고, 나도 그중의 한 명이었다. 이것이 내가 인도에 첫 발을 내디딘 계기였다.
처음에는 하이데라바드라는 도시로 가게 되었고, 거기에는 나와 비슷한 처지로 오계 된 여러 나라의 친구들이 있었다 대부분은 유럽에서 온 친구들이었고, 우리는 쉐어하우스에서 함께 지내게 되었다. 인도 물가로 책정이 된 우리의 월급은 그때 기억으로 약 만 6천 루피였고, 2000년대 후반정도의 시세는 대략 30만원 중반이었던 걸로 기억을 한다.
그러다, 발령이라는 것 받게 되었는데 모든 것이 느린 인도에서 거의 6개월 만에 Satyam 첸나이로 발령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첸나이 무역관에 있는 관장님의 통역을 도와 드리다, 관장님께서 같이 일해보자고 제안을 하셔서 첸나이 무역관 ( KOTRA )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무역관에서 일을 하던 직원은 약 7명 정도였다. 모두 다 인도직원이었고, 관장님을 뺀 내가 바로 유일한 한국인이었다. 다행히 직원들은 너무나 친절했고, 나를 식구처럼 잘 보듬어주었다. 무역관의 살림을 담당하고 있던 가야뜨리, 나름 계급사회인지라 모든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던 라비, 마케팅 리포트를 도맡아서 쓰던 스리니와 비제이 그리고 전화업무를 하고 시장 개척단을 위한 바이어와 컨택하는 일을 하던 다른 여자 남자 직원들까지 포함이었다.
첸나이의 계절은 hot hotter hottest로 나뉘는데, 그 힘든 열기 속에서도 그때의 사무실 분위기는 여느 밝은 햇살처럼 온화하고 따스했다. 그들은 나를 미쓰 오라고 불렀고, 정말 구식이긴 해서 처음엔 맘에 들지 않았지만 성에 존칭을 붙여주는 영국식 영어를 쓰는 인도였기에 나도 그들이 불러주는 다정한 미쓰오에 적응이 되어갔다.
스리니는 기억상으로는 20살 중반의 운동을 정말 좋아하는 친구였다. 몸도 좋고 약간 마동석 느낌의 구릿빛 피부에 브라만이라는 계급을 가졌으며, 몸안에 하얀 실을(브라만의 표식) 두르고 다니는 친구였다. 두 명 다 친절했지만, 그중 스리니는 내가 모르는 부분이 있을떄마다 찾아가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친구였다. 또한 워낙 밝고 유머러스해서 동료들도 잘 웃게 해주는 친구였던 걸로 기억한다.
어느 날은 나에게, 화장실 변기에 누군가가 watch를 떨어뜨려놨다며, 나보고 좀 봐달라는 것이었다. 가보니, 왓치가 아닌, 커다란 똥이 압력에 쓸려나가지 못하고 남아 있었다. 그러면서 이 왓치가 네 것이 아니냐며 되물었다. 나는 그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고, 우리는 왓치 주인을 결국 찾지 못하고 왓치 에피소드가 마무리되었던 걸로 기억이 난다.
장난꾸러기 같은 미소를 머금은 사내였고, 우리나라 20대 중반이라고 하긴, 순수한 청년이었다. 같은 공간에서 여러 해 시간을 보내다 보니, 인도 친구들과는 허물없이 친해졌고 서로의 힘든 일들이나 사생활도 나눌 수 있을 만큼 가까워졌던 것 같다. 그러던 와중 스리니가 결혼을 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사실 인도에서의 결혼은 연예결혼이 아닌 정략결혼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부모님이 정해준 사람과 결혼을 하게 된다. 스리니의 경우에도 그랬다. 브라만이라는 계급도 있기 때문에 아무 하고나 결혼하는 일은 사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했을 것이다.
나는 스리니에게 몇 번이고 물어봤던 걸로 기억을 한다. 괜찮냐고, 그렇게 얼굴도 모르고 몇 번 만나보지도 못한 사람과 결혼을 하는 게 괜찮냐고, 폐쇄된 사회가 아닌, 한국에서 온 사람들과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이미 시야가 넓어진 그가 과연 이런 결혼 생활을 할 수 있을까 우려가 되었던 것 같다.
결국 두 번 본 여자분과 결혼을 하게 되었고, 우리는 다들 결혼식에 초대되었다. 인도의 결혼식을 워낙 화려하고 요란스럽다. 시끄러운 소리, 음악, 화려한 색깔, 너무도 많은 사람들 혼을 쏙 빼는 정신없음을 단단히 준비하고 가야 한다. 그날은 정신없는 가운데에서도 내 눈은 스리니의 부인될 분이 눈에 들어왔다. 여자분은 건강하고 여장부스타일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의 촉이었던 것 같다. 조금 여리하고 스리니가 지켜주고 싶은 느낌의 여자분이었다면 그렇게 걱정이 되지 않았을 텐데, 왠지 여태껏 본 스리니와는 결이 다를 것 같은 느낌이었달까.
결국 스리니는 그 여자분과 얼마 살지 못하고 이혼을 했다. 인도에서의 이혼은 그 당시만 해도 정말 너무나 큰 이슈여서, 감히 상상하기도 힘들고 동네에서 거의 매장을 당할 수 있을 만한 일이었을 텐데 스리니는 그렇게 결정했다.
안쓰럽고 안타까운 감정이 들었던 그때와 달리, 중년이 다되어 생각해 보니 스리니도 그저 인생의 쓴 한 부분을 견디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싶은 맘이 든다. 삶의 쓴 구간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니까, 나에게도 그러했고 그에게도 그러했을 것이다. 다만, 세월이 지나 그 친구가 머릿속에 이렇게나 남아있는 이유는, 내 인생의 쓴 구간에 그 친구가 주었던 따스한 친절함 때문일 것이다. 인도의 강렬한 햇살 속에 있던 선선한 바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