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는 성당에서도 이루어지는 법이다.

그냥 내 인도이야기

by 영어하는 소시지

정신없이 나를 흔드는 바람 속에서 뿌리가 뽑힐 듯 괴로웠다. 우울했고 무기력했지만 그보다 우선은 살아남아야 했다. 그 당시 나는 약 16,000루피의 월급을 받고 있었고, 사는 곳은 철저히 고립된 여인숙이었으며, 인도회사에서 조차 능력을 인정받지 못한 잉여인간이었다.


그 당시 해외로 전화를 하기 위해서는 카드가 필요했는데, 그 카드에 충전을 하면 그래도 길진 않지만 충전한 금액만큼은 통화가 가능했다.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힘드네, 한국으로 돌아갈까 봐 "

" 거기서 더 버텨봐... 온다고 방법이 있는 건 아니잖아 "


서로의 상황이 힘들었다. 기대감 없이 질문했다고 생각했는데, 무의식적으로 기대를 했고,

거절감으로 다가왔다. 후회, 분노, 불안, 두려움과 수치 지겹도록 느껴보던 익숙한 감정들을 마주하자니 정신이 없었다.


그래도 우선 살아야 했다.


우선 여인숙 근처 동네를 돌아다녔다. 혼자 있다가는 나쁜 생각이 들 것 같아 저녁이 되면 무조건 밖으로 나갔다. 근처를 다니다 보니,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시장이 근처에 있었다. 갈만한 식당을 물색했고, 사람 좋아 보이는 주인이 있는 식당을 찾아다녔다. 알록달록 과일들도 눈에 들어왔다. 과일들을 물색하며 그나마 입맛에 맞는 과일들을 찾으려고 시도해 보았다. 망고스틴, 망고, 커스터드애플 등 제법 맛있는 과일들이 많이 있었다. 그 와중 순박한 인도분들은 매일 오는 나를 알아보시고 웃어주시고, 친절을 베풀어주었다.


나를 살리는 친절이었다.


동네가 조금 익숙해지니, 사는 곳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둡고 작은 상자 안에 갇혀있는 듯한 느낌이 조금씩은 사라지는 듯했다. 그리고 회사에서 일을 주지 않는 날은 출근해서 회사 근처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근처에는 있는 인도 후식가게도 있었다. 너무 달아서 혈당스파이크가 올 듯했지만 먹었다. 마트는 없어서 길거리 구멍가게에서 비스킷도 사 먹으며 동네를 탐색했다.


돌아다니다 알게 된 건 , 그곳이 나름 부촌이었다는 것이다. 골목골목을 돌아다녀보니, 대 저택들이 꽤 많았고,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경비가 삼엄해서 안을 들여다볼 수도 없던 어느 집에는 주지사도 살고 있다고 했다. 괜찮아 보이는 커피숖, 레스토랑, 상점들 등이 조금씩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그때의 월급으로는 편안하게 들어갈 수는 없는 곳이었으나, 깡으로 들어가 보기도 했다. 그러면서 나의 영역을 넓혀 나갔다.


여느 때와 같이 회사 근처를 돌아다니고 있는데 나보다 조금 어려 보이는 동양 남자 두 명이 지나가고 있었다. 커다란 배낭, 오랜 여행을 하고 있는 듯한 행색이지만 눈에 익은 옷차림, 그리고 익숙한 표정.


'한국사람이다'


순간,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다.


세상에, 이 낯선 곳에서— 한국 사람이라니.
겉으로 티를 내지 않으려 했지만, 가슴이 이상하게 두근거렸다.

제발,
나를 알아봐 주길.

“혹시… 한국분이세요?”


놀라움과 반가움이 동시에 묻어난 인사가 오갔다. 얼마 후, 우리는 근처 커피숍에서 마주 앉아 있었다. 그들은 여행의 막바지에 있었다. 곧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코트라에 다녀오는 길이에요. 무역관이 근처에 있어요, 걸어서 10분도 안 돼요.”


처음 듣는 말이었다. 코트라, 무역관, 한국인.
그러나 이 낯선 도시 한복판에서 듣는 따스한 한국말이었다.

그들은 또 근처 성당 이야기도 해주었다.
관장님도 다니고, 가끔 한국 사람들이 온다고.


그 주 주말, 나는 성당으로 향했다. 기도라도 해야겠다는 심정이었다. 그곳에서 관장님을 처음 만났다. 첫인상은 의외로 따뜻했고, 내 존재를 진심으로 반가워해 주셨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 관장님은 뜻밖의 제안을 했다.


“통역 아르바이트 한번 해보겠어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원래 비즈니스는 사석에서 이루어진다는 교수님의 말씀이 문득 떠올랐다.


비즈니스는 성당에서도 이루어지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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