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룸메이트와 함께 산다는 것은.

그냥 내 인도이야기

by 영어하는 소시지

사람들은 하나둘 고국으로 돌아갔다.

리시케시 아파트의 공기도 달라졌다.

누군가 떠나면, 또 누군가가 들어왔다.


러시아에서 온 파샤는 보드카와 함께 리시케시의 밤을 열었고,

마케도니아 출신 이바는 수다와 웃음으로 집을 채웠다.

폴란드의 까샤는 나와 결이 비슷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내 방에는, 파벨이 들어왔다.


그 당시 내방에만, 유일하게 밖으로 통하는 발코니가 있었다.

문을 열면, 야자수 숲이 끝없이 펼쳐졌다.

그 숲은 사실 어느 지주의 정원이라 했다.

인도 생활에서 유일하게 숨이 트이던 순간이었다.


처음엔 거절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낯선 남자와 방을 나눈다는 건, 상식 밖의 일이었다.


그렇지만 파벨은 당장 갈 곳이 없었고, 난 다른 방으로는 옮기고 싶지 않았다.


" 난 대부분 밖에서 생활할 할 거야, 그리고 낮에는 거실에서 컴퓨터 작업을 할 거고

낮에 방에 들어올 일은 거의 없어. 방에서는 밤에 잠만 자도록 할게 "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나는 그렇게 하자고 했다.

물론 나에게는 절대로 남자로 보이지 않을 듯한 파벨의 첫인상도 한 몫을 했다.



지내다 보니 파벨은 다정하고 배려심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그의 배려 덕분에 나는 낮에는 방을 나 혼자 차지하며 사생활을 즐길 수 있었다.

그 친구가 하는 일은 인도의 실상을 비디오로 찍어 그것을 편집해 NGO (Non Government Organization-비영리단체)로 보내는 일이었다.

그래서 매일밖에 나가 촬영을 했고, 집에서는 편집작업을 했다.

주말에는 바다에서 소형 카이트를 이용한 웨이크보드를 즐기는 운동 마니아이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니 서로 허물없이

친해졌다.

한 번은 파벨이 물어보았다.

" 왜 이름이 아이샤야? "


" 사실 한국이름이 있는데, 한국이름은 발음하기도 어렵고 그래서 그냥 발음하기 쉬운 외국이름을 고른 거야. 한국사람들은 대부분 그렇게 하기도 해. "



" 원래이름이 원데 "


" X 윤 x" 야"


" 어쩐지~~!!! 너는 절대로 아이샤처럼 생기지 않은 동양인인데, 왜 아이샤일까 했어.

윤이 훨씬 잘 어울려 이제 니 이름 같다. 나는 너를 '윤'이라고 부르겠어"


나는 그때부터 플랫에서 '윤'이 되었다.



하루는 파벨과 마트를 갈 일이 있었다. 마트를 가려면, 빈민촌을 지나야 했다.

인도의 빈민촌은 텐트 같은 움막이 많이 모여있는 곳이다.

동이 트는 아침이면 아이들이 길거리를 공용화장실로 사용한다.

야생의 삶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 그 길은, 나에게 늘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파벨과 그 길을 지나가는데 아이들이 어김없이 달려들었다.

그러나 파벨은 웃으며 아이들에게 과자를 나눠주었다.

그리고 아이들과 현지어 떠밀 말로 몇 마디 섞기도 했다.

아이들은 천진난만한 웃음을 지으며 따라다녔다.

그 순간, 내 안의 두려움이 녹았다.


190의 키에 드래드를 한 남자가 인도 옷을 입고 아이들에게 친절한 미소로 화답하고 있다.

그야말로 타는듯한 햇살아래서 그의 모습 보고 있자니 아이들을 가장 예뻐하셨다던

예수님의 모습이 스친다.

호러에서 명화로 장르가 바뀌는 순간이었다.


어느 날은 나에게 작은 비즈니스를 하고 싶다며, 혹시 괜찮은 텍스타일 셀러(textile seller)를 소개해줄 수 있냐고 했다. 당시의 난 코트라에서 일을 하고 있던 터라 만남을 주선했다.

난 그래도 안면이 있고 나름 신뢰를 쌓아놓은 인도 분을 소개해주었다.

그러나 거래는 수월하지 않았다. 서로의 입장차이가 너무 달랐다.

인도상인답게 높은 거래액을 불렀고, 파벨은 단호했다.

기싸움이 오가는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과정일 뿐인데,

기싸움하는 비즈니스맨들 사이에서 난 어쩔 줄을 몰랐다.


그 순간 파벨이 나에게 "윙크"를 하며 속삭였다.


' 인도사람 다루는 거 다 알고 있어, 걱정하지 마'


긴장되는 씬에서 로맨스 씬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파벨은 얼마 지나지 않아 예정대로 고국으로 돌아갔다.

그가 발품을 팔아 홀로 만든 빈민가의 삶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들고.



인생의 장르는, 준비된 태도에 따라 바뀐다.

여유는 결국 경험에서 온다.

나는 그당시 준비되지 않았었고, 그렇기에 매순간 겁이 났던것 같다.


독일의 하늘이 좀처럼 개질 않는다.

그럼에도 글을 쓰며 추억하자니,

그가 던져주었던 그 순간들이 환하게 다가오는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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