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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변인 Aug 11. 2022

조랭이의 비보








조랭이가 죽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죽은 것 같다. 조랭이는 공장에서 우리 가족이 주는 밥을 얻어 먹던 고양이다. 어렸을 때부터 공장 사무실 안에서 거주하는 홍만이와 절친이었고, 길냥이였지만 고급 버터가 들어간 빵을 정말 좋아했다. 조랭이가 죽게 된 경위는 다음과 같다. 우리 가족은 홍만이를 포함해 고양이 5마리를 구조해 키우고 있었고 더 이상은 무리였다. 그렇게 조랭이와 프린스, 애미,할애미 등등 늦게나마 공장에 발을 들인 고양이들은 사료밖에는 줄 수 없었다. 조랭이와 애미는 할애미의 자식이다. 이름이 그게 뭐냐고 아빠를 나무랐지만, 정성스레 지어준다면 그건 책임지겠단 뜻인걸 알았다.  


 그 중에서도 조랭이와 프린스는 사람을 잘 따라 추운 날이면 사무실 안에서 묵고 가는 손님이었다. 언제는 프린스가 공장 옆의 돼지 축사 똥통에 빠진 채로 들어와 사무실을 똥바다로 만들어 놓은 적도 있었다. 엄마는 프린스를 잡고  목욕을 시키는 수고를 치러야 했다. 프린스는 엄마에게 발톱 하나 드러내지 않았다.


  왜 조랭이가 죽었는데 프린스 이야기를 하냐면 조랭이는 프린스 때문에 죽게 된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프린스는 잡종인데 그중에서도 특이한 외래종과 섞인 것으로 추정된다. 일반 고양이의 3배 크기에, 예쁜 호박색 눈과 회색 털을 지녔다. 또한 처음부터 사람의 무릎 위에 앉을 줄 알았으며 애교도 곧잘 부린다. 누군가에 의해 유기당했을 것이다. 그는 큰 덩치 덕에 위협감을 주고 참새와 온갖 벌레들을 아그작아그작 씹어먹곤 한다. 이 때문에 수컷인 홍만이와 조랭이는 프린스를 경계한다. 수컷 중 유독 작고 약했던 조랭이는 프린스를 피해 공장을 떠났다가, 돌아왔다가를 반복했다. 그러다 어느 날 돌아오지 않았다. 


 사실 조랭이가 프린스 때문에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고 프린스가 밉지도 않다. 조랭이를 위협하긴 했지만 직접 물어 죽인 것도 아니고, 큰 상처를 입힌 적도 없다. 프린스도 삶이 매우 고달플 테다. 비쩍 마른 몸에 일년 내내 고양이 감기인 허피스를 달고 산다. 그래도 난 조랭이의 사망 소식을 듣고 엄마에게 왜 그 지경이 되도록 냅뒀냐고 화를 냈다. 하지만 알고 있다. 일주일 내내 아침부터 저녁까지 공장에서 고된 노동을 하는 엄마가, 모든 고양이를 신경쓰기란 불가능하다. 애초부터 밥을 주지 말았어야 하는걸까. 이름까지 붙여줬으면 최소한 보호해줬어야 하는데. 어떻게 죽은걸까? 제발 교통사고만 아니었으면. 조랭이가 가끔씩 생각날때마다 이런저런 생각과 죄책감이 몰려온다. 소식을 알 길이 없으니 그저 빈 자리만 느껴진다.


 조랭이의 죽음이 자연의 일부려니 생각하다가도 우리가 얼만큼 개입했지? 아니, 개입할 수 있었지? 라고 생각하면 속이 쓰리다. 누군가는 지나치다고 할지 모르지만, 다수의 고양이와 생활하게 되면 항상 생각한다. 동물와 인간의 경계, 자연과 인간의 경계를.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지만 최상위 포식자다. 먹이사슬 위에 군림하고 있는 만큼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고도로 발달한 문명의 아스팔트 위 조그만 발바닥이 얼마나 살아남을 수 있을까? 부디 우리를 용서해주고 다음에는 안전한 곳에서 생을 온전히 살았으면 좋겠다. 조랭이가 좋은 곳으로 갔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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