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변인 May 26. 2023

ADHD로 살기

눈을 떴다 감으면 매초 다른 것이 나타났다 다시 사라지는 것을 반복한다. 대개 도파민을 분비시키는 자극물들이지만 이따금 소중한 것들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면 나는 당황한다. 눈을 깜빡였기 때문이다. 어, 방금 뭐였지 그거? 엄청 중요한 것 같았는데. 기억해야 해. 뭐였더라... ‘그거 뭐였지’를 반복하는 삶. 그것이 내가 살아온 삶의 전부였다.

 이십대 중반쯤에 ADHD 진단을 받았다. 병명은 집중력 장애지만 나는 행동과 충동성 과잉인 쪽이었다. 진단을 받기 전에는 불안 장애로 병원을 4년을 다녔다. 그러다 집이 이사를 가야만 했고 병원을 바꾼 어느 날 새로운 의사선생님은 웃으면서 나에게 말했다. “효주씨, ADHD인 것 같아요. 근데, 걱정말아요. 아인슈타인도, 에디슨도 ADHD였으니까요!” 어쩌면 선생님은 삶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가볍게 해주고 싶어 그런 말을 한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진단을 받기까지 20년이 걸렸고 나의 은인은 진단을 해주고 한 달 뒤 병원을 떠났다. 

 약을 먹고 나서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나의 2n년 인생을 다시 돌아보게 됐다. 아, 그래서 내가 그때 그랬구나. 내 잘못이 아니었구나. 원래 내가 그렇게 태어난 거였구나! 음, 거기까진 좋았다. 근데 이제 어디로 가야하지? 

 “언제까지 패배자 마인드로 살거야? 그러지 좀 마.”

정신이 퍼뜩 들었다. 사귄지 5년이 다 돼가는 애인 S의 말이었다. 5년쯤 사귀었다고 하면 다들 굉장히 놀라는데, 시간이 무슨 의미가 있나 생각한다. S의 MBTI는 ISFJ. ‘수호자’다. 뭔가 굉장히 있어 보이지만 사실 내 뒤치닥거리를 누구보다 앞서서 해주는 사람이다. 그래서 S에겐 항상 미안하면서도, ‘쟤도 나 못지 않게 괴짜군! 나 같은 앨 좋아하다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모자랄 뿐만 아니라 추하니까. 자격지심에 찌들었고 타인과 나를 항상 비교하니까. ADHD는 신경계장애다. 그러니까, 겉으로 확연히 드러나는 장애는 아니라는 거다.  드러나지 않는 장애의 장점은 사회에서 직접적인 차별을 받지 않는 다는 것이고, 단점은 사회가 만들어 놓은 정상성을 나도 모르게 학습해서 나 자신을 차별한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길을 걸을 때마다 넘어지면 숨겨두었던 ADHD라는 카드를 꺼내 발동시켰다. 나는 ADHD라서 모자라니까! 어쩔 수 없는거야! S는 이 말을 제일 싫어한다. 자기연민이 과하다고 했다. 분하지만 맞는 말이다. S는 항상 그랬다. S는 세상 누구보다도 모진 말을 해놓고, 마음을 후벼 파놓고 나를 꾸욱 안아줬다. 그래서 나는 S의 말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생각해보니까 나...엄청 감정적이었어’ 라던지 ‘나중에 똑같은 실수만 안하면 돼. 괜찮아’ 라던지. 그렇게 생각을 마무리하니 조금은 가벼워진 듯 했다.


그래서...결론이 뭐냐고? 없다. 그냥 산다. 재밌으려고 사는 거다. 새로오신 의사선생님은 PD가 되고 싶다는 내게 ‘ADHD랑  어울리는 직업이에요. 잘 고르셨는데요?’ 라고 했다. 

선생님의 말에 아직까지 동의할 순 없지만, 적어도 지금 소중한 것들을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눈을 깜빡이고 말아서 눈 앞에서 사라져버려도 내 손을 놓지 않고 있다는 걸 기억하려고 한다. 그리고 내가 다른 사람의 손이 되어주고 싶다는 꿈을 갖고 산다.  

작가의 이전글 조랭이의 비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