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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변인 Jul 06. 2023

습작-모순

그렇게 한여름도 아닌 것 같았는데 가방을 메고 몇 개의 소소한 짐을 들고서 나다니는 서울은 눅눅하듯 뜨거웠다.  한낮의 햇살이 등을 향해 총을 두두두두 - 쏘고 있었고 우리는 방황했다. 이유는 스터디가 2시간 전에 파토났기 때문이었다. 서울에서 열리는 스터디에 참여하는, 서울에 사는 스터디원들은 약속 시간 두시간 전에는 이미 서울행 열차를 탔으리라는 생각을 못하는 모양이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서울 어딘가에서 서울 사람들처럼 재미있게 놀고 싶었다. 그래서 무작정 온 서울은 더럽고 복잡하고 꿉꿉하기만 했다. 

"교보문고 가볼래?"

재우는 코에서 땀을 뚝뚝 흘리며 물었다. 웬 교보문고. 전국에 널린 게 서점인걸. 그건 우리 동네에서 버스타고 나가면 있어.

"여긴 좀 특별하거든."

당일치기 서울여행에 무슨 큰 기대를 했냐만은, 지구 반대편으로 여행을 가서 굳이 맥도날드에서 밥을 먹는 느낌이었다. 광화문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저 멀리 보이는 북한산의 질감, 생각보다  엄중했던 이순신 장군의 무게,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과 도로. 아이들은 분수에서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진짜 부럽다. 나도 저렇게 아무 생각없이 물에 젖어서 놀 때가 있었겠지? 재우야, 너 내가 저렇게 놀면 나 구석구석 타월로 닦아주고 뽀송한 옷으로 갈아입혀줄거니?

"아니. 그리고 사람들 많은 데서 겉옷도 못 벗으면서."

광화문에서 세종문화회관 그리고 교보문고를 따라 걷는 길은 신기하다 못해 경이로웠다. 들어온 지 몇 년은 지났지만 단 한번도 먹어보지 못한 쉑쉑버거, 우리 동네보다 몇 배는 큰 올리브영. 그리고 넓어도 너무나 넓어 책과 사람에 치인 채 길을 잃어버린 교보문고. 여기가 거기구나. 슬쩍 보니 재우의 눈도 그렁그렁 빛이 나기 시작했다. 사실 별 거 아닌 거 알면서도 우린 흥분하기 시작했다. 소설에 그렇게 자주 등장하는 광화문과 교보문고는 문예창작과 학생들에게는 꿈의 장소였다. 우린 소설 속 주인공들이 걸었던 길을 걸었고 같은 책을 샀다. 이런 곳을 스물 넷이 되어서야 올 수 있었다는 게 문제겠지만. 

그런데 그 넓고 번쩍이는 교보문고 안은 너무나 더웠다. 입고 있던 반팔이 무색하게 노란 머리 외국인은 긴팔에 스웨터를 입고 있었다. 긴팔을 입은 사람들도 꽤 있었고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책에 몰중하고 있었다. 실내로 들어오자마자 무섭게 우리는 온 몸에 샤워를 한 듯 땀이 뻘뻘나기 시작했다. 재우는 어디 아파보이는 사람처럼 땀을 흘려서, 우린 고통 속에 소리없이 낄낄 웃어댔다. 그리곤 이내 도망치듯 교보문고를 빠져나왔다.

"서울 쉽지 않네."

그래도 이렇게 사람들 사이에 낑겨 살면 삶이 뭔가로 채워지지 않을까? 이상한 생각 할 틈도 없이 말이야.

"그러니까. 이런 짓도 안하고."

재우는 웃으면서 내 손목을 들어올렸다가 힘없이 놓았다. 잘못 쓴 글을 빗금쳐서 지우듯 잘못 산 생도 그렇게 지울 줄 알았던 지난 날이 재우의 손에 들렸다가 휙 날아갔다. 우습게도 그날 나는 생의 의지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공황장애로 몇 년동안 제대로 생활도 못했으면서, 사람의 눈을 아직까지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하면서 사람들로 이루어진 숲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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