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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명인 Oct 31. 2016

극악무도한 악당

미안해도 살아가는 법

#1. 어느 이른 새벽, 싱클레어는 지하철을 타고 출근했다. 그의 집은 기점이었기 때문에 그는 늘 언제나 바쁜 출근시간에도 앉아 갈 수 있었다. 역을 하나 둘 지나고 나면 객실은 금방 가득 찬다. 공교롭게도 싱클레어의 앞에는 한 노인이 서 있었다. 노인은 딱 보기에도 몸을 추스리기가 어려워 보였다. 그렇지만 싱클레어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싱클레어는 끝내 비키지 않았고 보다못한 한 중년이 자리를 양보함으로써 불편한 장면은 막을 내린다.


#2. 어느 한 낮, 출장이 있어서 싱클레어는 버스를 탔다. 버스기사의 반가운 인사, 그런건 그에게는 중요하지 않은 듯 하다. 한번도 와보지 못한 목적지에 다다를 때 쯔음 어느 낯선 중년 여성이 말을 걸어온다. 길을 물어본다. 싱클레어는 자신있게 길을 가르쳐드린다. 중년 여성은 연신 고맙다는 말을 하며 싱클레어가 가리킨 그곳으로 바삐 뛰어간다. 그는 '천만에요' 하며 언짢은 것 같기도 하고 기뻐하는 것 같기도 한 알 수 없는 표정을 짓는다. 


#3. 어느 노을 진 저녁, 싱클레어는 퇴근 후 집에 가는 골목길에 애써 아이스크림을 사먹는다. 먹기 위해 비닐을 벗긴다. 그리고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바닥에 쓰레기를 집어던진다. 그 순간 미묘한 표정의 변화가 살짝 스쳐지나가지만 이내 무덤덤한 표정을 짓는다.


애정결핍에 떨던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남들에게 이쁨을 받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고자 했다. 남들을 기쁘게 하는 이 일은 세상 무엇보다도 그 아이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아이는 남이 원하는 것을 결코 놓치는 법이 없었다. 알고나면 사랑받는 것은 아이에게는 너무나 쉬운 일이었다. 아이 곁에는 점차 많은 사람들이 생겨났다. 아이는 늘어만 가는 사람들을 조금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러한 집착으로 인해 아이의 행복은 이내 공포가 되었다. 행복의 이면에서 아이는 혹시나 사람들이 자신을 떠날까 늘 두려움에 떨었다. 아이는 버림 받는 걸 상상할 수도 없었다. 아이는 사람들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좋은 사람이려고 했다. 하지만 아이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떠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사람은 떠났다. 아이에게 가장 많은 사랑과 행복을 주고 아이를 독점하려고 했던 사람도 아이를 떠났다. 아이는 세상에 대한 분노와 절망감 그리고 상실감에서 헤어나올 수 없었다. 그리고 이러한 일련의 사건 이후 아이는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아이는 더이상 사랑을 갈구하지 않았다. 대신 아이는 미움을 사기로 했다. 미움만이 아이를 진정시키고 위로해 주었다. 미움만이 살아갈 이유를 부여해 주었다.


#1' 비켜준다고 무언가 달라지는 일은 없다. 비켜주는 순간, 노인은 물론 고마워 할 것이다.  나는 예전에 그랬듯 기쁨에 충만해질 것이다. 하지만 부질없는 일이다.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극악무도한 짓을 계속해서 해야하고 또 익숙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나는 조만간 내가 들이마시는 산소에게마저 죄송해지고 말 것이니까. 아이러니하게도 노인은 자리를 비켜준 나보다, 비켜주지 않은 나를 보다 오래토록 기억할 것이다.


#2' 호의를 배푸는 것 만큼 자기 자신을 괜찮다고 착각하기 쉬운 일은 없다. 딱 그만큼 악한 마음은 그 틈새를 비집고 올라온다. '너는 괜찮은 놈이 아니야'라고 기어코 나를 굴복시키려 한다. 괜찮은 나는 계속 괜찮기 위해 긴장의 끈을 놓치 못한 채 보상없는 거짓말을 반복하다 지쳐서 이만 굴복해버리고 만다. 반대로 내가 저지르는 악행은 변명할 여지없이 나를 편안하게 만든다. 누군가는 그럼에도 내가 좋은사람이라고 얘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악한 마음은 비집고 올라오는 그 무엇에도 변명할 필요가 없다. 아무래도 상관없는 마음이 바로 악한 마음이고 강한 마음이므로.


#3' 나는 쓰레기를 버렸다. 이 쓰레기는 나에게는 작은 일탈이지만, 인류에게 있어서는 위대한 범죄행위이다. 누구든 알아도 좋고 몰라도 좋을 일이지만 중요한 것은 내가 오늘 또하나의 악행을 저지름으로써 구원받는다는 것이다. 새벽에 나오는 청소부나 지나가는 사람들의 경멸감을 통해 나는 인정받는다.


싱클레어는 돌아온 집에서 몸을 씻고는 아주 개운한 표정을 하고는 잠자리에 눕는다. 사각사각, 그를 반기는 푹신한 이불의 촉감에 불현듯 외롭고 고독한 기분을 느낀다. 깜짝 놀란 그는 애써 아닌 척 하지만 벌써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다. 분명하게 억울한 표정이다. 그는 베게에 얼굴을 묻고 흐느낀다. 이날 저녁 그의 흐느낌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의 극악무도한 짓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신은 언제 이 아이를 구원해 주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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