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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명인 Feb 01. 2017

반성할 필요 없음.

반성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그는 말했다. 다시 잘해볼 수는 없는 거냐고. '속지말자.' 나는 단호하게 다시 잘해볼 수는 없는 거라 말하고 서둘러 까페를 나섰다. 따라나오지 않았다. 그는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두 손에 파뭍은 얼굴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마지막의 마지막이 되어서도 모르는 것 투성이다. 전해지지 않는다. 내가 이 문 밖으로 나가 모퉁이를 돌아서면 그는 그제서야 고개를 들고 고마움에 잔잔한 미소를 띨 지도 모른다. 에이 설마. 생각만으로도 섬뜩하다. 어쨌든 이 관계는 끝났다. 드디어, 마침내, 결국에는 끝. 그런 섬뜩한 나날들도 이제는 안녕이다.


"너를 좋아해, 나랑 사귀자."

그가 나에게 했던 최초의 고백은 거짓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 나도 너가 좋아."

내가 표현했던 최초의 마음에도 거짓은 없었다.

그와 나는 그렇게 만났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좋았던 마음으로 관계를 아름답게 그려가기에는 그는 서툴렀고,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자주 싸웠다. 사랑하는 사람끼리 싸우는 것은 한편으론 섬뜩한 기분을 안겨줬다. 그때는 그게 무슨 느낌인지 몰랐지만 지금은 분명히 안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포장된 그 수많은 다툼들은 나를 사랑해달라는 절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것이다. 우리 둘 다 자기가 받고싶은 형태의 사랑만을 주었을 뿐, 서로가 진정으로 원하는 사랑을 줄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해도 역시나 그가 더 잘못했다. 어쨌든 그는 계속해서 바빴다. 그는 많은 우선순위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와의 만남에서 나는 자꾸 비참해져갔고, 사랑을 구걸하게 되었으며 자주 울었다.


그도 그 나름대로는 힘들었을 것이다. 집착 심한 여자를 만나 하고싶은 것도 많이 포기하고, 많은 것을 양보하고 배려하는 것이 힘들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보다는 힘들지 않았을 것이다. 적어도 내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것은 확신할만큼 아낌없이 주었기 때문에. 내가 정말로 견디기 어려웠던 것은 그가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 듯한 태도였다. 그는 자신이 받고싶은 사랑을 더이상 표현하지도 않았다. 아니,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그는 자신이 더이상 사랑을 받지 않아도 괜찮다고 표현했다. 여름 어느날, 그가 자신의 자유분방함에 대해 드디어 여자친구가 이해해줬다고 기뻐했을때 나는 눈물이 흘렀다. 내가 그를 전보다 덜 좋아했기 때문에 생긴 일이라는 걸 알아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는 모든 것을 문제없이 잘 숨겼다고 생각하겠지만 어느 누군가를 많이 사랑하고 그를 끊임없이 관찰하는 사람은 때론 그 자신보다도 그를 더 잘 알 수 있다는 사실을 그는 몰랐을 뿐이었다. 그가 연락 없이 거리를 헤맬 때, 나는 아무생각도 하지 않으려고 끊임없이 나를 다그쳤다. 점차 지쳐갔다. 내 자신이 너무 불쌍했다. 사랑이 이렇게 힘든 거라면 헤어지는 것이 차라리 덜 힘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의 오랜 만남의 끝이 보이는 순간이었다. 그가 없는 앞으로가 너무나도 두려웠던 지난날의 요동치던 감정도, 어느날 밤에 이르러서는 너무나도 차분하고 고요했다.


이별은 생각만큼이나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여태까지 쌓아왔던 수많은 추억들과 경험들도, 내일이면 언제그랬냐는 듯 잊혀지기를 시작할 것이다. 아깝지만 내 미래보다 아깝진 않다. 이렇게 매정할 수 있다는 것에 스스로도 참 놀랍다. 그가 나를 붙잡는다. 왜 붙잡지? 거짓말이다. 자기가 자신을 속이는 지도 모른 채 내뱉는 거짓말... 그 불안한 마음 언저리에서는 제발 붙잡히지 말아달라고 빌고있는 그가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끊임없이 속삭여 온 사랑한다는 말 조차도 모두 다 거짓말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억울할지 모르겠지만 나보다 더 억울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피해자라고 주장하고 싶겠지만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 그는 사랑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중요한 것은 내가 날마다 울었다는 것이다. 그게 우리 사이의 한계였다. 이제와서 너의 잘못이라고 몰아세우고 싶지도 않다. 다만 우리가 만났던 것이 잘못이다. 마지막 선물로 자유를 줄게. 다시는 만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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