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실패작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명인 Apr 24. 2023

헤어짐의 의미

'우리 그만 만나자'

관계의 종결을 선언하는 행위.


헤어짐을 당하면 우리는 보통 그가 떠났다고 표현한다. 그러나 이별의 통보는 떠나겠다는 선언이 아니다. 정확히는 떠나달라는 선언이다. 내 인생에서 나가달라는 요구이다.


그는 나의 인생에서 나가지 않는다. 나갈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을 내가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그는 시도때도 없이 나를 침범하기 때문이다. 그를 향한 나의 마음은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헤어짐은 접근금지명령이다. 방을 빼달라는 집주인의 권리 행사이다. 감독의 선수 교체다. 내가 필요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더 뼈아프다. 다시금 멀리서 바라볼 수밖에 없다.


그러니 그의 해맑은 웃음을 마주치는 날이면 모든 마음이 참담히 붕괴되는 것이다. 나의 제거가 쾌적하게 완료되었다는 뜻이니까.


헤어짐, 그것은 내 인생에서 사라져달라는 실존적 결단이다.

연인으로서 나의 부존재를 명령하는 최후의 통첩이다.

그는 나를 떠나지 않는다. 떠나야만하는 것은 나이다.

나는 마음을 주섬주섬 모아 황급히 떠난다.

뒷모습은 처량하고 초라하고 볼품없고 부끄럽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편함이 비어있어 헛헛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