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출을 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이면 꼭 우편함을 보게 된다. 와야할 우편도 없고, 기다리는 우편도 없는데, 비어있는 것만으로도 헛헛함을 느낀다. 우편조차 나를 찾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헛헛함을 느끼면서 '아, 내가 많이 외롭구나' 생각하게 된다.
괜시리 메일함과 휴대폰을 뒤적거리는 것도 마찬가지의 이유일 것이다. 아무 연락이 없다거나, 찾아오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래봬도 지난 수십년간 가장 사랑과 관심을 많이 받은 사람이라고 자부할 수 있다. 그럼에도 헛헛함을 느끼는 것은.
내가 여러모로 꽤나 궁지에 몰렸다는 것이고, 꽤나 물러졌다는 것이고, 나를 구해줄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후회와 회환 속에서 나를 건질.
여전히 행동력도 실행력도 부족하고 그 바탕이 되는 마음도 부족한 나로서는 다시금 구원자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정확히는 구원자가 아니라 구원의 인식을 기다린다.
죄 많은 삶을 사해주고 모든 것을 명료하고 도덕적이게 만들어주는, 그래서 내가 그 도덕 위에 반듯이 누워 내 삶 자체로 사랑받을 수 있는 그런 구원의 요람을 기다린다.
나는 누구보다 올바른 삶을 살기 위해 고심하고 노력했다. 늘 정의의 편에 서고 싶었다. 그러나 그렇지 못했던 삶과 파장들은 나를 만신창이로 만들었다. 내가 내 자신에게 너무 엄격했던 걸까. 그러나 이것은 나를 지키는 방패였다. 그래서 그 두꺼운 방패 덕분에 속이 썩어간다.
앞으로도 세상은 나에게 수많은 시련을 줄 터인데, 내가 바로 선다면 그 시련을 이겨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시련을 주는 것이 세상이 아니라 나라면, 나는 나를 죽여야할지도 모르겠다.
살기 위해서 나를 죽여야 한다니, 죽은 뒤의 나의 삶에는 어떤 의미가 남을까. 삶을 지탱할 의미가 남아있을까.
세상이 나에게 더 미움 받으라 하는듯 하다. 더 사람들에게 상처주고 상처입으면서 살라고 한다. 그렇게 몸부림쳐서 나 자신도 주변도 다 다치게 하라는 것 같다.
싫다. 피할 수도 없고 즐길 수도 없으니까. 아무 것도 하지 않으련다. 다 내려놓으련다. 후회로 만신창이가 되련다. 더이상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상처주고싶지 않다. 그냥 사라지고 싶다.
사랑이라는 불완전한 것에 목메여, 존귀한 생이 위태롭게 되다니. 사랑을 쫓다가는 내가 죽을 것 같다. 그 낭만주의적 사랑 때문에 소중한 것들을, 소중한 사랑들을 얼마나 잃어 왔는지. 나를 죽일 게 아니라 사랑을 죽여야겠다.
내일은 아무 우편이라도 우편함에 담겨주었으면. 여기 살고자 하는 사람이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