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의 농간
인간의 존엄은 노력보단 유전자랑 친하다.
오늘은 오랜만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아끼고 존경하는 동생이 미국에 박사과정을 하러 떠나는 송별회 자리였다. 가지 않을 수 없었고 가고 싶었다. 모인 자리에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한가득이고 서로가 서로를 향한 애정이 가득해서 그 기분 좋음이 넘쳐났다. 서로의 근황과 종교 철학 사회학 등 다양한 인문학적 대화와 원자력과 수소와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과 유전자에 이르기까지 즐거운 대화들이 이어졌고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만이 야속할 뿐이었다. 이런 자리가 오랜만이라 오랜만에 잊고 있던 감정을 느꼈다. 잊고 있던 내 삶의 경험을 느꼈다. 나는 부족하고 억울한 게 많은 사람이지만 딱 그만큰 감사할 일들이 넘쳐났던 사람이었다.
끝의 끝을 붙잡아도 끝이 났고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 불현듯 최근에 나의 영혼을 흔드는 어떤 사람의 sns를 염탐한다. 필사적으로 암과 투병하는 사람 곁을 지키는 사람의 sns. 우연히 알게 되었는데 뭔가 울림이 크게 있었다. 뭐랄까. 결국 살아났을까. 아니면 결국 떠나는가. 어째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응원을 받을 수 있는가. 그런 삶은 무엇이며, 그런 삶을 떠나보내는 것은 무엇인가. 글이 너무 절절하다. 공감하는 내가 있고 동시에 관조하는 내가 있다. 남겨진 남편과 어린 딸은 어떡하지. 한 사람의 서사가 엿보는 것만으로도 이토록 잔인한데 세상 뉴스는 이런 잔인한 소식을 하루에 수도 없이 허망하게 전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가치있는 명예로운 죽음따위란 찾아볼 수가 없다. 모두가 너무 허망하게 죽는다. 무엇이 우리를 이토록 아둥바둥 살게 하고 무엇이 이토록 허망하게 우리를 퇴장하게 하는지.
삶의 바닥과 천장의 간격에 아찔하게 전율한다. 함부로 놀려지는 입과 손이 그 잔인함을 더한다. 희망도 절망도 알 수 없는 밤. 필사적으로 다정해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들아. 오래토록 존재해주기를. 이것은 인간으로서의 나의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