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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명인 Nov 30. 2023

침묵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말이 많다.

할 말이 너무 많아서,

그 말들이 서로 다퉈서,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그래도 말하고 싶어.


아름다운 장및길을 걸은 줄 알았더니

그 가시에 할퀴어져 온통이 피바다였다.

붉은 장미인 줄 알았더니

내 피에 물들었을 뿐이었다.

걷지 말아야하는 길을 걸은 것만 같았고

돌아보니 다 내가 죽인 것만 같았다.

잊혀지길 바라는 내가 있고,

잊혀지지 않기를 바라는 내가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야 한다는 것.

그보다 잔인한 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또 찾아야 한다는 것.

그보다 더 잔인한 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잊어야 한다는 것.

그보다 더 더 잔인한 것은

이 과정을 계속 반복하게 되리라는 것.


너를 사랑했다는 사실.

왜 그것은 죄책감이 되었을까.

떳떳한 그리움이 부럽다.

한없이 속죄하고 싶다.

미안해. 날 용서해줘.


사랑한다고 말할수록

죽어가는 추억과

형용할 수 없는 자기 혐오에

숨이 쉬어지지 않아서

이 모든 것을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그만하자.

그리워하는 것.

지나온 길을 훼손하는 것.

가지 못한 길에 미련을 갖는 것.


나조차 이해할 수 없음에도

누군가의 이해를 바랐다.

온 세상이 합심해서 나를 구겼고

그렇 점점 일그러지고 말았다.


이제는 매듭을 지어야 한다.

결국 언제나 사랑을 이겼던 도덕에게

사랑이 한 방 먹인 셈이다.

사랑을 했다.


인간으로서 드높은 꿈을 꾸었다.

잠깐이었지만 황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살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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