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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팥 Jul 26. 2021

인어 엄마

브런치 ×저작권위원회 공모전 출품작

"썩을 놈이 또 나더러 외상으로 생선을 사 오란다. 에휴, 뭐 어쩌겠어 할 수 없이 가서 고등어 열 짝을 받아왔지. 인어공주도 아니고 벙어리처럼 말 한마디를 못 허구 돈만 냅다 던져줬어. 내가  우리 사장 직원인 거 알면 생선 안 줄까 싶어서. 이게 뭐여 이게."


엄마 나이 일흔셋에 취직한 생선 구집은  장사가 꽤 잘 되는 편에 속했지만 젊은 사장 경영을 잘하지 못해 도매처에 생선 대금이 밀리기 일쑤라고 했다. 그래서 그는 우리 엄마를 이용해 밀린 대금을 주지 않다른 가게인 척 슬며시 생선을 떼 오곤 했다.


"이모 없음 난 못살어!건강하게 오래 사셔!"


능글능글한 웃음을 지으며 엄마를 실컷 구월 삶는 사십 대 초반의 사장은, 생선을 구워 파는 시간이 끝나고 나면 사우나에 들러 싹 씻 뒤 번듯한 옷으로 갈아입고 사업자 리스로 빌려 타는 외제차에 올라 여자를 만나러 가는 것이 취미라 했다.


"근데 엄마, 인어 공주는 왕자라도 만나러 간 거지만 엄만 생선 구우러 가는 건데 직히 공주는 아닌 거 같아. 그냥 인어 할매쯤?"


엄마의 한탄에 장단을 맞추면서도 속에서 눈물이 차올라, 엄마에게 괜한 농담을 던지고 말았다. 평생 아빠가 벌어다 주는 돈으로 집에서 살림만 한 엄마가 인근 시장에서 생선을 굽는다고 했을 땐 놀람을 뛰어넘어 충격이었으니. 아빠의 월급이 밀려도 절대 나가서 돈 벌 줄은 모르던 그녀가 아니던가. 생때같은 삼 남매 밥 한 번을 못 주면 엄마 노릇 사형선고라고 생각하던 우리 엄마가, 나이 칠십이 넘어 시장에서 노동일을?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아빠의 사업은 날로 기울기만 했고 엄마도 더 이상 감싸 안고 기다릴 새끼도 없었다. 그런 엄마가 스스로 돈을 번다는 것이 이해 가지 않을 일도 아니었다. 그래도 생선이라니, 그 냄새나는 일을 우리 엄마가 한다는 것은 미처 도려내지 못한 생선 창자를 씹은 것보다 더 쓰고 아픈 일이었다. 하지만 내가 어쩔 도리는 없었다. 당신의 생활비를 대줄 능력 없는 딸인 것을.


'인어공주'


엄마라는 두 글자 대신 내 핸드폰에 저장된 인어공주는 오늘도 시장엘 갔다. 무더운 여름 열기를 헤치고 고등어에 굵은소금을 뿌려 절인 뒤 뜨거운 맥반석 불에서 노릇하고 바삭하게 참도 잘 구워낸다. 한더위 열기와 불이 엉켜 매염을 토해내도 그녀는 한마디 말도 없이 마냥 일만 할 뿐이다. 그녀의 얼굴을 아는 동네 사람들이 묻는다. 아유, 여기 왜 이러고 계셔요? 엄마가 대답 대신 미소만 짓는다. 차마 돈을 벌어야 한다는 말을 하지 못해서다. 인어공주가 왕자를 사랑한다는 말을 차마 하지 못했듯, 엄마 또한 끝내 하지 못하는 많은 말들을 가슴으로 또 삼키고 삼키리.


하지만 동화 속 인어공주는 대단한 여자였다.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아름다운 목소리를 마녀에게 넘기고 두 다리를 얻은 그녀가. 누군가는 남자 하나 얻자고 미련하게 인생 다 갖다 바친 여자라 탓할지도 모르겠지만 이 나이 들어 그녀를 생각하니 그 용기만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위대한 것이었다. 비록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물거품이 되었을지라도, 그녀는 원하는 것을 얻고자 꿋꿋이 자신의 길을 선택한 매우 능동적이고 진취적인 여성임에 틀림없다.


엄마 나이 칠십이 넘어 이 더위에도 뜨거운 불앞에서 생선을 구워 그 땀으로 바꾼 소중한 돈을 떠올리니 눈물이 난다. 대접받을 노인이란 타이틀도 평생 자랑스럽게 여기던 누구 엄마라는 닉네임도 버리고 자신의 이름 석 자로 그 불앞에 서 있을 우리 엄마. 엄마는 누가 뭐래도 나의 인어공주님이다. 너무 아름다워 눈물을 담지 않고는 차마 바로 볼 수가 없는 주름이 자글자글한 인어공주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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