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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팥 Nov 23. 2023

브런치라는 권력 아래서 꾸는 꿈

마음을 안아주는 생각들

"작가님, 소설은... 잘 안 팔리기도 하고. 그래서 출판을 잘 안 해요."


아는 에디터의 그 말이 내내 손톱 끝에 박혀 빠지지 않는 골치 아픈 가시가 되어 내 마음을 찌르고 있었다.


"넌 소설을 써. 너한테 그게 더 맞아."


대학 때 나를 지도해 주셨던 교수님의 그 말을, 나는 20년이 넘도록 어쩌면 훈장처럼 내 안에 새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혼자만서랍에서 몰래 초콜릿을 집어먹듯 나는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못할 소설들을 쓰고 또 썼다.


비밀스럽게 쓰고 또 버려졌던 나의 소설, 그 비밀스럽고 가여운 이야기들. 누군가에게 읽히지도 못할 것들을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며 나는 혼자 행복했고 또 혼자 불행했다. 매년 낙방하는 신춘문예와 공모전도 점차 세월이 흐를수록 내게 상처로 남았다.


그렇게 내가 혼자만의 패배를 반복하는 동안 새롭고 대단한 작가들 탄생했고 그들의 이야기는 날개가 돋친 듯 팔리고 있었다. 어떤 것은 영화나 드라마가 되기도 하고 또 어떤 것은 세기의 찬사를 받으며 상도 받았다.


나는 안되는구나, 이 버리지 못한 꿈은 언젠가는 나를 갉아먹을 수도 있겠다는 절망감에 휩싸이는 순간이 잦아진다. 아주 오래전, 미용실에 앉아 혼자만의 소설을 쓰고 있다고 말하던 60대 아주머니가 불쑥 떠오른다. 소설을 집필 중인데, 아주 대단한 이야기가 될 것이라 확신하던 그 아주머니를, 나는 정상이 아닌 사람을 보듯 흘끔거리며 쳐다보았다. 머리를 해주던 미용사는 '어머나! 대단하시다!'라는 아무 감정이 없는 맞장구를 쳤고.

무명의 작가로 살아가는 나도 그 아줌마처럼 되지는 않을지 불안해진다. 어쩌면, 이 감정은 나뿐만이 아닌 많은 작가 지망생들이 가진 공포일 지도 모른다. 나이는 먹어가고 글은 팔리지 않는 이 애매한 재능을 뒤로하고 그저 현실만을 위해 살아갈 것인지, 그래도 가슴 한편에 남은 꿈을 위해 계속 노력해야 하는지를 두고 저울질을 해야 하는 초라한 공포를.


브런치에 올린 글이 벌써 143개가 되었고 지금 쓰는 이 글을 올리게 되면 144개의 내 글이 브런치에 등록된다. 제법 자극적인 주제의 에세이나 제목을 올리면 꽤 높은 확률로 그 글은 메인에 추천이 되곤 한다. 그러나 이곳 브런치에서도 나의 소설은 단 한 번도 메인에 올라간 적이 없다. 정말 애석하게도.


작가를 위해 만들었다고 하는 이 플랫폼에서도 역시 나의 소설은 외면받는다. 나는 계속 요즘 트렌드에 걸맞 독자가 원하는 감정에 충실한 글을 써야 한다. 상처, 회복, 치유 등에 관한 사람들이 원하는 주제에 관해서 말이다.


그렇다고 에세이가 싫다는 것은 아니다. 무엇이든 쓸 수 있다면 그 또한 어떠하리. 그러나 내가 쓴 이야기들을, 이왕이면 내가 좋아서 쓴 이야기를  사람들이 더 많이 봐주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있는 것이다. 그건 마치, 발레리나가 호두까기 인형보다는 백조의 호수가 더 좋다고 말하는 것과 비슷한 것이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소설을 읽어봐 주시고 끊임없이 격려를 해주시는 몇몇의 독자 덕분에 나는 아직 이 애매한 재능을 버리지 못했고 오늘도 작은 소설과 에세이를 브런치에 남긴다.


타자를 바삐 치던 손을 멈추고 큰 숨을 내리 쉰다. 멀리 창밖에 며칠째 이어지는 빗방울을 세어보다 잠시 꿈을 꾼다. 브런치에 내가 글을 올리기만 하면 그것이 소설이든, 에세이든 가리지 않고 메인에 올라 많은 사람들이 내 글을 읽어주기를.  무심히 열어본 메일함에 출판사로부터 도착한 출간 제의 메일로 가득 차기를. 찬사와 비난이 난무하는 나의 댓글창을 보며 기뻐하고 분노할 수 있기를.


브런치라는 이 권력 아래 결국 타협하고 굴복하는 초라한 작가일지라도, 나는 아직도 꾸고 있다. 나만의 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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