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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팥 Sep 28. 2020

우리 엄마랑 고스톱 좀 쳐주세요.

우리 좋은 마음만 해요

직장에서 가깝게 지내는 선배가 있다. 선배는 알뜰하면서도 살림도 잘해 평소 여자로서 존경하고 부러워하는 사람 중 하나다. 가끔 선배와 이런저런 사담을 나누는데, 선배가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얼마 전, 선배의 시어머님이 몸이 편찮으신지 기력이 영 없으시고 집에 누워만 계셔서 가족들이 걱정이 아주 많았다고 한다. 늘 활발한 성격의 어르신이 집에 계신 시간보다 밖에서 할머니들과 노시는 시간이 더 많으신 분이라 간만의 칩거에 가족들은 더 염려가 되었단다. 하지만 다행히 건강에 큰 이상은 없 그저 심각하지 않은 귓병 치료로 복용하게 된 이비인후과 약이 몸의 기운을 가라앉게 만들었던 것이 원인이었다.

선배의 남편은 자타공인 '효자'인데 효도를 하는 것에 좀 남다른 방법이 있다고 한다. 남들은 부모를 살뜰히 챙기고 돌보는 것이 효자라고 알고 있지만 막내아들인 선배의 남편은 오히려 그 반대로 '엄마를 귀찮게 하는 것'을 효도라고 알고 있단다.

예를 들어 한창 꽃게가 철일 땐 수산시장에서 꽃게를 잔뜩 사 와서 어머니에게 손질을 해 꽃게탕을 끓여달라고 떼를 쓴다던지, 엄마가 해주는 겉절이가 맛있으니 꼭 이번 주 안에 만들어서 자기 집에 갖다 놓으라고 으름장을 놓는다던지 하는 방법이다.

선배의 남편은 낼모레 오십인데, 아직도 엄마를 못살게 굴다니 철딱서니가 없으신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나이 든 엄마가 '우리 아들은 아직도 내 손을 필요로 해'라고 느끼실 수 있도록 부러 어린양을 부리시는 게 아닌가 다.

선배는 시댁과 가까이 살면서 솜씨 좋은 시어머님 음식을 마음껏 먹는 것도 너무 좋지만, 이제 어머님 연세도 있으신데 힘드시니 그만 좀 했으면 좋겠다고 남편을 나무라는데도 남편의 의지는 언제나 확고하다고 한다. '엄마는 내가 잘 알아. 그래야 더 좋아해'라며.

그런 선배의 남편이 엄마가 편찮으시다는데 얼마나 걱정이 되었을까. 그래서 그는 어머니의 병의 원인과 증세를 알고 난 뒤 그만의 방법으로 엄마에게 또 다른 효도를 했다.


그는 일단 시장으로 가 평소 어머니와 친하게 지내던 다른 할머니들이 모이는 식당을 찾아갔. 그리고는 할머니들을 모아놓고 돈을 만원씩 쥐어드렸다고 한다.


'이모들, 이거 갖고 우리 집에 가서 우리 엄마랑 고스톱 좀 쳐주셔. 알겠지? 이돈 다 떨어질 때까지 우리 집에서 나오지덜 마시고. 아주 재미있게 밤새 치고 오셔!'

선배의 시어머님은 고스톱이라고 하면 자다가도 일어나실 정도로 좋아하신다고 한다. 할머니들끼리 치는 고스톱은 그 어떤 놀이보다도 재미있다고 늘 말씀하신다고. 또 고스톱이 끝나고 나면 서로 딴 돈인 몇 백 원, 천 원에 훨씬 덧붙이는 돈을 내어 맛있는 것도 함께 나눠 드신단다.

결국 할머니들은 효자가 쥐어준 거금으로 맛있는 간식을 사들고 가, 아주 아주 재미있는 고스톱 판을 벌였다. 그리고 선배의 시어머니는 약보다도 효도와, 우정과 고스톱으로 귓병이 다 나아지셨다.


효도는 참, 어렵고도 쉽다. 그렇지?


철없이 효도를 하는 남편의 이야기를 하며 선배가 실컷 웃더니 이 말을 던졌다.




코로나 이전의 일입니다.

이번 주 수, 토 연재는 쉽니다. 모두 즐거운 추석 되시고 건강하세요! 늘 고맙습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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