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손짓 하나가 날개를 달아 꽤 멀리 날아간다.
캐나다에서 살고 있는 지인이 서울로 잠깐 여행을 왔었다. 브라질 사람으로서 캐나다로 이민을 가서 밴쿠버에서 홈스테이 회사를 하던 분이었는데, 잠깐 서울 여행하는 것을 가이드해드린 적이 있었다.
점심식사를 간단히 하고는 강남역 지오다노빌딩 뒷편 스타벅스에서 커피한잔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길건너편 하겐다즈 앞으로 방송국 촬영팀이 장비를 설치하기 시작한다. 평소에도 호기심이 많던 지인이 하겐다즈로 자리를 옮기자고 한다. 그리고는 하겐다즈 안쪽에 자리를 잡고 있는데, 갑자기 배우 김래원씨가 하겐다즈 안으로 들어왔다.
훤칠한 키에 잘생긴 얼굴, 한 눈에 배우임을 알아본 지인이 카메라를 들고는 촬영을 하자 김래원씨가 손가락으로 무언가 제스츄어를 취한다. 지인이 깜짝 놀라 카메라를 급히 내려놓으면서 내게 말을 했다.
지인 : 아이쿠, 아무래도 사진찍지 말라고 한 것 같은데, 괜찮을까요?
나 : 사진 한장 정도는 상관없을 거에요. 저쪽에서 지우라고 한 것도 아니고.
카메라에 딸린 작은 LCD창으로는 그가 무슨 손짓을 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지인과 나는 김래원씨가 촬영중이니 사진을 찍지 말라던가, 아니면 조용하라던가 하는 손짓인줄 알았다.
이후 지인과 함께 사무실로 돌아와서는 컴퓨터 화면으로 보는데, 손가락 모양이 브이자다. 지인이 카메라를 들고 찍으려고 했을 때 김래원씨는 그 카메라를 보고 브이자를 그리며 살짝 미소를 짓고 있었다.
우리가 생각했던 사진찍지 말라거나 조용히하라는 표시가 아니라 제대로 팬서비스를 해주신 것 같다. 지인이 그 사진을 보고 너무 좋아한다. 캐나다에 돌아가서는 사무실에 그 사진을 컴퓨터에 넣어놓고는 사무실로 찾아오는 한국인 홈스테이 학생들에게 매번 자랑을 했다고 한다.
공인으로 살아가는게 얼마나 힘들겠는가? 부와 명예를 떠나서 가는 곳마다 자유롭지 못하고 늘 대중에게 노출된다는 것은 그리 반가운 일이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저 무심히 지나쳐도 될만한 일에 오히려 유연하게 대처해준 김래원씨 덕분에 지인은 한국을 좋게 기억할만한 사진 한장을 더 가졌으며, 나 또한 그의 미소와 깨알같은 팬서비스에 평생 품어도 좋을 흐뭇함을 가졌다. 그가 출연한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면 그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솟아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