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하다는 것은 조금은 있다는 의미, 희망은 있다.
떠나봐야 가까운 것들의 소중함을 더욱 절실히 느낀다고 했던가? 누군가에게는 이것이 여행의 의미일 수도 있을 것이다. 몽골에 가면 꼭 하고 싶었던 두가지가 있었다. 첫번째는 광활한 들판을 말을 타고? 유유자적 다녀보는 일. 두번째는 몽골의 전통이동가옥인 게르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일.
몽골의 테렐지국립공원은 문명의 혜택을 애써 거부하는 듯 아직까지도 태초의 자연을 그대로 간직하는 듯 했다. 끝까지 닿으려 애써 눈을 멀리 두어야할 정도의 드넓은 초원, 사방을 둘러 에워쌓는 자연에 인간들은 잠시 몸을 맡길 뿐, 테렐지의 주인은 인간도 동물도 아닌 자연 바로 그 자체였다.
사실 게르에 대한 아무런 사전 정보도 없었다. 그저 사진 몇장만 보고 갔을 뿐. 겉으로 보기에는 말끔한 이동주택처럼 보여서 첫 인상이 참 좋았다.
테렐지 군데군데 위치한 게르 체험 시설들. 어두워지기전까지 여러 게르를 탐방했다. 강이나 냇가 바로 옆에 있는 게르 주변에는 너무 많은 나무들로 인해 진정한 몽골 초원의 게르 느낌이 없어 일부러 허허벌판에 세워진 게르를 선택했다.
처음 게르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코 속으로 날카롭게 파고드는 매퀘한 양털냄새. 수분 후에 이 냄새에 적응하고 부터 비로소 참으로 아늑한 공간으로 다가왔다. 중앙에 난로가 놓여져있고 사람이 누워서 쉴 수 있는 침대도 갖추어져있어서 세면대와 화장실이 없는 소형주택에 버금가는 곳이었다.
간밤에 난로의 불이 꺼지면 엄습하는 찬 기운에 오들오들 떨면서 자기는 했지만 게르에서의 하룻밤 체험은 아직도 내게 긴 여행의 추억을 남겨주고 있다. 그 추억중에는 이튿날 아침 한바가지의 물이 주는 소중한 교훈도 있었다.
지난 밤 출발전에 미리 구입해서 간 식수도 간 밤에 모두 동이 났다. 절대적으로 부족한 물로 인해 이튿날 세수는 물론이고 양치질까지 포기하고, 최초 출발했던 몽골의 수도인 울란바토르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날이 밝고, 아침에 기지개를 켜고 문을 나서 아침 공기를 쐬며 잠시 산책을 하려는데, 우리가 머문 게르 앞에 설치된 양철통에 든 한 바가지의 물. 주인 아주머니가 아침 일찍 세수라도 하라고 채워넣으셨나보다. 얼른 게르로 다시 돌아가 칫솔과 치약을 챙겨 상쾌하게 양치질을 하고, 남은 물로 밤새 푸석해진 얼굴에 물을 끼얹을 수 있었다. 소나기처럼 퍼부어대는 샤워기에 전신 샤워를 해도 이처럼 상쾌한 느낌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기대하지 않았던 물 한바가지, 그것에 감사해야할 이유는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여행을 떠날 때는 늘 조금은 모자라게, 조금은 부족하게 다녔던 것 같다. 그리고 도착한 여행지에서는 대부분의 경우, 풍요함보다는 조금은 불편하게 또한 부족하게 지낸다. 그것이 여행을 더욱 기억에 남게 하는 자발적 모자람이 아닐까? 풍요로울 때 알지 못하는 것들을 우리는 부족할 때 비로소 그 소중함을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