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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온 Dec 20. 2016

의도된 왜곡, '위플래쉬'

'Whiplash'에서 Damien Chazelle의 천재성을 엿보다

2014년에 제작 완료됐지만 우리나라에서 2015년에 개봉한 '위플래쉬'(Damien Chazelle 감독, 런타임 106분)는 2015년 가장 핫한 영화 중 하나로 떠올랐다. 장담하건대 이 영화 이후로 몇 달 동안 실용음악 학원에서 드럼을 배우기 시작한 사람과 음반 샵의 재즈 코너의 매출이 늘었을 것이다.

영화를 본 사람들 대다수가 일반적인 사제간의 관계를 그린 영화는 아니라는 것은 알아차렸을 것이다. 하지만 오해하는 것과는 달리 이 영화는 시련과 고난을 통한 성장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시련과 고난을 통한 조련을 더 크게 이야기한다. 하지만 잘못 봤다고 해서 전혀 이상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Damien Chazelle 감독은 그 사실을 부분적으로 은폐한 상태로 우리에게 전달한다.

일단 앤드류부터 살펴보자. 감독은 앤드류를 본질적인 해결책보다는 우회적인 해결책을 찾으려 하는 인물로 비춰낸다. 영화관에서 팝콘 위에 건포도를 얹어서 먹는 아버지랑 하는 대화를 보면,

앤드류: I don't want raisin in it. 건포도랑 같이 먹는 걸 안 좋아해요.
아버지: Why didn't you say that? 그럼 말하지 그랬어.
앤드류: I just eat around them. 그냥 피해서 먹으면 돼요.
아버지: I don't understand you. 난 너를 이해하지 못하겠다.

그냥 피해서 먹으면 된다는 말은 영화 끝까지 앤드류를 수식하기에 적합한 메타포로 등장한다. (여기서 어? 하면서 마지막 장면을 기억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해당 부분은 뒤에서 지적하겠다)

또한 앤드류는 계속 Buddy Rich, Jo Jones 등 과거의 위대한 재즈 드러머들을 우상으로 삼는다.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명백하게 과거에 머무르면서 그들이 걸었던 길이라면 어떻게든 따라 가려하는 태도를 보인다. 위대해 지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외의 것도 무의미하다는 신념. 그리고 그런 앤드류의 신념이자 취약점은 플래처에게 조련당하기 쉬운 대상으로 그를 끌어내린다.


그런 수직적인 권력 구조는 영화 초반에, 아직 플래처의 극악무도한 교육 방식이 제대로 스크린에 발현되기 이전부터 우리에게 예고된다.

앤드류에게 말을 거는 플래처의 모습

플래처는 연습에 참여하기 직전 앤드류에게 말을 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그의 팔이다. 상대방을 벽으로 몰아세우며, 앤드류의 탈출구(스크린 안쪽)를 차단한다. "나는 여기에 있어야 할 이유가 있다"라는 말을 되뇌게 하는 모습 또한 이미 앤드류가 플래처의 영향력 밑에 들어갔음을 말해준다. 심지어 다음 컷에서 플래처의 얼굴로 가려지는 손. 이렇게 교묘하게 폭력은 은폐된다.

바로 다음 컷에서 교묘하게 가려진 플래처의 손. 이렇게 감독은 교묘하게 '폭력'을 은폐한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플래처가 앤드류에게 이야기 한 Charlie Parker의 Bird라는 별명을 얻게 된 이야기다. Jo Jones가 연습 중 Charlie Parker에게 심벌을 던져 잘못하면 머리를 날릴 뻔한 일화를 말한다. 이 야기에서 틀린 점은 두 개가 있는데, 하나는 Jo Jones는 심벌을 바닥에 던졌다는 사실이고, 두 번째는 Charlie Parker의 별명은 공원에서 자주 연습해서, 혹은 치킨을 너무 좋아해서 얻었다는 설이 정설로 여겨진다는 점이다. 허나 플래처가 알려준 이 일화는 앤드류에게 '진실'이자 '정설'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마치 플래처의 교육 방식이 위대해 지기 위한 '정설'로 포장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는 안 그래도 본질적 해결책을 갈구하지 않는 앤드류에게 플래처가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믿음을 강화시킨다.


여기서 플래처를 한번 짚고 넘어가자.

영화 중간에 플래처는 한번 눈물을 보인다. 자신이 가르쳤던 트럼펫 연주자인 션 케이시의 교통사고 이야기를 접했다고 하며 그의 연주를 들려준다. 이 눈물은 한 사람을 잃었음에 대한 감정을 대변하지 않는다. 자신이 길러낸 위대한 연주자의 죽음에 대한 아쉬움을 대변할 뿐. 이 아쉬움은 해당 연습에서 새벽까지 400 BPM에 육박하는 더블 타임 스윙의 완성에서 드러난다. 다음 '씨앗'을 찾으려고만 하지, 인간적인 공감 따위는 찾아볼 수 없다. (심지어 션 케이시는 플래처와의 만남 이후 극도의 불안 증세와 우울증을 보였으며, 사실은 자살했음이 알려진다.)

플래처는 자신의 교육 신념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앤드류의 고발 이후 셰이퍼로부터 퇴출당하게 된 플래처는 우연히 바에서 마주치게 된 앤드류에게 자신의 신념이 옳음을 다시 한번 어필한다.


There are no two words in the English language more harmful than "good job".

우리말 중에 "잘 했다"만큼 해로운 말은 없어.

그의 논리에 의하면 위대함을 위해서는 그 어떤 가혹한 교육 방식도 허용된다. 그가 영화 중 보여준 수많은 개인적 인격모독과 도를 넘어선 부모님 욕까지 모두, 위대함을 위해 거쳐가야 하는 과정으로 포장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게 옳은 거겠지,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마지막 장면으로 이끌려 들어간다.

자신을 퇴출시킨 앤드류에 대한 복수극을 위해 카네기 홀의 연주에 플래처는 그를 초대한다. 밴드의 성공보다는 개인적인 복수를 위해 앤드류를 초대한 플래처, 그리고 연주 전의 한마디.

플래처: You think I'm fucking stupid? 내가 멍청이로 보이냐?
앤드류: What? 뭐라고요?
플래처: I know it was you. 네놈이 불은 거 다 알아.

그 개인적인 분노를 해소하기 위한 복수극은 성공할 뻔한다. 앤드류가 모르는 노래를 무대 위에서 지휘하는 플래처와, 차가운 박수 소리를 뒤로 하고 내려가는 앤드류. 플래처가 만족한 듯한 웃음을 띄면서 관객들에게 미한함을 전한다. 하지만 그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앤드류는 다시 무대 위로 올라가 '캐러번'을 연주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플래처에 대한 반항과 분노로 자신의 주도 하에 연주하기 시작했던 곡이지만 결국 그 주도권은 앤드류의 성장을 알아차린 플래처에게 빼앗긴다. 앤드류는 결코로 근본적인 문제였던 플래처를 해결하지 못한다. 결국 그의 주도권 아래로 들어 갔을 뿐이다. 이는 긴 솔로 후에 플래처의 큐를 기다리는 앤드류와 미묘하게 웃음 짓는 플래처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아버지가 앤드류의 연주를 보면서 짓는 표정. 과연 이게 아름다움을 목격한 사람의 얼굴일까 아님 참혹한 현실을 마주한 사람의 얼굴일까.

서로 눈을 마주 보며 웃는 두 사람. 그리고 환상적인 연주와 그를 가감 없이 보여주는 탁월한 카메라 조작. 극 중에서 가장 밝고, 크게 비치는 앤드류와 플래처의 모습. 헷갈려서는 안 된다. 여기서 완성된 것은 플래처의 교육 이념이 옳았음을 증명해줄 또 다른 연주자일 뿐이다. 드럼 연주를 뽐내는 앤드류를 바라보고 있는 아버지의 얼굴에는 경외나 축하보다는 두려움, 당황스러움이 묻어난다. 영화 초반에 여자애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며 쭈뼛거리던 순수함은 사라지고 성공만을 바라보는 플래처의 교육 이념의 피해자로 변신하는 장면이다.


그렇다. 이 영화는 명백하게 '성공'을 이야기하지만 그와 동시에 '피해자'의 이야기를 말하며 질문을 던진다. 위대함을 위해서는 시련이 필연적인 것일까. 플래처와 앤드류는 서로가 없었더라면 존재하지 않았을 인물들인가. 위대함을 만들어 내고자 하는 사람과 위대해 지기 위해선 무엇이든 희생할 의지가 있는 사람. 플래처의 방식을 분명 앤드류 안의 위대함을 조금 끌어내긴 했으나 그건 앤드류의 재능이나 위대함, 음악의 완성도로 인해 이뤄 낸 것이 아니다. 플래처는 결국 단순 무식한 방식으로 복잡한 인간, 그리고 음악을 다루려 하는 독재자일 뿐. 하지만 우리는 첫 연주의 실수 후의 마지막 연주만을 목격한 카네기 홀의 관객들처럼, 감독의 화려하면서도 정확한 리듬감을 통해 연출된 피날레로 인해 마치 플래처가 있었기에 앤드류의 성장이 있었다, 라는 착각을 하게 된다. 그런 은폐된 잔혹함을 통해 Damien Chazelle 감독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플래처는 필요악(惡)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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