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 속에 흐릿해진 이성. '너의 이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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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카이 마코토(新海 誠) 감독의 '언어의 정원'을 본 뒤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나쁘지 않은 스토리, 적절한 상징물의 응용과 정말 일본스러운 분위기를 즐기면서 봤던 것이 기억이 난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났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은퇴를 여러 번 번복하는 뉴스를 들으면서 일본 애니메이션의 미래를 걱정하며 가슴 졸였던 시간에 대한 해답을 과연 '너의 이름은.'(신카이 마코토 감독, 런타임 106분)은 줄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극장에 자리를 잡았다.
좋은 영화다. 감독은 지금까지의 작품에서 보여줬던 자신의 강점을 제대로 활용한다. 현실적으로 말도 안 되는 스토리지만 세심한 작화와 연구를 통해 표현해 낸 도쿄(東京)와 이토모리(糸守)는 작품에 강한 '현실성'을 부여한다. 감독은 이 현실성을 바탕으로 자유롭게 등장인물과 스토리를 녹여낼 수 있는 기회를 얻어내지만 그 기회를 온전히 다 사용했는지에 대해서는 글쎄, 아직 부족하지 않나 싶다. 이성적으로 봤을 때 스토리의 면밀함과 개연성 부족 등, 부족한 점이 많다. 그래도 이 영화는 좋은 영화다. 이는 보는 이의 가슴을 꽉 채우는 먹먹함의 뿌리가 선명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름은.'은 감성이 이성을 흐릿하게 만드는 경험을 선사한다.
영화는 '단절'과 이를 매꾸는 여정을 이야기한다. 미츠하(三葉)는 이토모리(糸守)라는 시골에서, 타키(滝)는 도쿄(東京)라는 대도심에서 살아간다. 성장 배경의 차이와 성별의 벽을 둘은 '꿈'을 통해 조금씩 극복해 간다. (서로의 몸이 뒤바뀌는 현상을 그들은 처음에 꿈이라고 칭한다) 하지만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서로의 거리는 더욱 극명해진다. 3년의 시간과 죽음. 너무나도 다른 서로에게 이끌림을 느끼는 둘은 서로를 만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한다. 미츠하는 3년 전의 타키를 만나기 위해 도쿄로 향하고 타키는 미츠하가 있는, 아니 있었던 마을로 향한다.
둘은 단절을 끝내고 서로를 마주하기 위해 몸부림친다. 이를 돕는 연결 고리는 존재한다. 미츠하의 머리띠이자 타키의 팔찌인 붉은 실. 서로를 마주 보게 하는 황혼의 시간. 그리고 이 영화의 소제인 몸이 바뀌는 날 들. 하지만 이 둘이 서로를 마주하는 데에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이중에는 없다. 붉은 실, 황혼의 시간, 몸이 바뀌는 날 들 모두 '꿈'이 끝나고 잊혀 간다. 결국 둘을 이어주는 것은 '무언가'인지 '무엇'인지 모르는 불분명한 것을 찾으려는 '의지'다. 어떻게 해서든 찾아가겠다는, 당신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잊어버리지 않겠다는 간절함이 결국에 둘을 한 곳에 불러 모은다.
성인이 되어 서로를 마주한 미츠하와 타키는 묻는다.
너의 이름은? 君の名前は?
둘이 초면이었더라면 '너'(君)가 아닌 '당신'(あなた)를 썼겠지만, 둘은 서로를 잊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써 왔다. 옅어졌고, 기억은 흐릿해졌지만 서로에 대한 느낌을 끊임없이 되뇌며, 이름을 물어보며 살아왔다. 옅어진 기억일지라도 둘은 초면은 아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소설 중 하나인 '100% 완벽한 여자아이를 만나는 일'에서 남자와 여자는 서로에게 완벽한 존재와 만난다. 그러나 둘은 인연이라면 언젠가 만날 거라는 이야기와 함께 각자의 길로 걸어간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둘은 마주치게 되지만 결국 엇갈린다. 이 일에 대해 남자는 동료에게 그저 엇갈렸을 뿐이라고 말한다.
"어제 100%의 여자아이와 길에서 엇갈렸단 말이야." 하고 나는 누군가에게 말했다.
"흠, 미인이었어?"라고 그가 묻는다.
"아니야, 그렇진 않아."
"그럼 좋아하는 타입이었겠군."
"글쎄, 생각나지 않아. 눈이 어떻게 생겼는지, 가슴이 큰지 작은지, 전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겠다고."
"이상한 일이군."
"이상한 일이야."
"그래서 무슨 짓을 했나? 말을 건다든가, 뒤를 밟는다든가 말이야."
"하긴 뭘 해. 그저 엇갈렸을 뿐이야."
절대로 메워질 수 없을 것 같던 간격. 멀어질 것만 같은 기억들. 감독은 하루하루를 살아가기 바빠서 그만 놓아버리고 싶은 생각이 들어도 잊지 말아 달라는 감성을 전한다. 말도 안 되는 공허함도 잊지 않는다면 언젠간 치유되지 않을까라는 애틋함과 간절함.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면 아름다웠던 인연의 고리가 다시 이어질지도 모른다. 이름을 모르는 너와 마주하게 되는 날이 올 때까지, 붙잡고 잊어서는 안 된다.
만약 '너의 이름은.'을 다시 본다면 아래의 내용들을 염두에 두면서 보면 또 다른 감상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붉은 실: 미츠하의 생명이자 둘을 이어주는 '시간'의 상징물이다.
-황혼의 시간: 誰そ彼時(타소 카레 도키)라고 읽히는데 영화 내에서는 이를 '낮도 아니고 밤도 아닌 시간, 세계의 윤곽이 희미해지고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과 만날지도 모르는 시간'이라고 설명한다. 타소 카레 또한 '거기 누구세요'라는 의미 또한 가지고 있다.
-설명의 부제: 감독은 왜 미츠하와 타키가 이끌리는지 명확하게 표현하지 않는다. 무조건 '개연성의 부제'라고 치부하지 말고 모두 한 번쯤 느껴 봤을 이유 모를 끌림의 감정으로 해석한다면 조금의 의구심은 사라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