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마지막이란. '라 라 랜드'.
주의1: 본 문서에는 영화 내용 누설이 있습니다.
주의2: 영화를 보지 못한 분들은 한번 보고 오시는 것을 권장합니다.
나는 '라 라 랜드'(Damien Chazelle 감독, 런타임 126분)를 영화관에서 3번 봤다. 처음 볼 때는 혼자 보고, 두 번 째는 친구와, 마지막은 다시 혼자 봤다. 처음 영화를 본 나는 감독의 치밀한 연출에 감탄하면서 정말 매료됐다. 친구랑 같이 이 영화를 보고 나는 친구도 나와 같은 감동을 느꼈기를 내심 기대하면서 어땠냐고 물어봤다.
"어때? 완벽하지 않아?"
그러자 친구가 하는 말,
"음... 잘 만든 건 알겠는데, 만점을 주고 싶진 않아. 왤까?"라고.
나는 그 말이 걸려서 그 날 심야로 한 번 다시 이 영화를 봤다.
왜 나에겐 이 영화가 완벽하게 느껴졌을까. 근데 왜 만점을 주고 싶지 않을까. 사실 생각해 보면 당연했다. 이 영화는 내러티브(스토리) 면에서 빈약하고 비현실적이다. 서로 안 좋은 첫인상으로 만난 두 사람이 야경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서 춤 한번 췄다고 가까워지고, 친구가 밴드 하자고 했는데 처음 시작한 밴드가 세션한테 주당 1,000달러를 챙겨줄 수 있고,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심지어 뻔한 갈등 구조, 그리고 쉽게 해결되는 갈등. 그런데 왜 이 영화는 아름답고, 평이 좋을 수밖에 없을까.
아마 이 영화의 끝만큼은 아름답고 비현실적인 이야기와는 달리 너무나도 현실적이기 때문이 아닐까.
미아(Emma Stone)와 세바스찬(Ryan Gosling)이 처음 키스를 한 그리피스 공원. 밤에 이 공간은 꿈과 환상을 이야기한다. 둘은 플라네타리움을 틀고, 하늘로 날아오른다. 별 사이에서 춤추는 둘, 아름답지만 말 그대로 꿈일 수밖에 없는 순간을 이야기한다. 나중에 이들이 이별 후 낮에 만나서 그리피스 공원을 올려다보면서 하는 말이 심장에 파고들었다.
세바스찬: Not much to look at, huh? 별로 볼 거 없지?
미아: I've seen better. 이보다 좋은 것 많이 봤어.
그들의 아름다웠고 애틋했던 밤(꿈)의 추억은 낮(현실)에 보면 별거 아니었다는, 그런 자각의 순간이다. 이 사실을 더욱 직설적으로 보여준 것이 이 영화의 끝 장면이다. 미아가 남편과 함께 세바스찬의 클럽에 앉아 회상을 하는 장면. 이 모든 것은 우리가 혹시 그랬더라면, 하는 가정을 하고 시작한다.
만약 세바스찬과 미아가 처음 마주쳤을 때 차갑게 어깨를 부딪치고 지나가지 않고 뜨겁게 입맞춤을 했더라면. 만약 세바스찬이 키이스(John Legend)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고 미아 곁을 지켰더라면. 만약 미아의 연극이 성공적으로 진행되었더라면. 둘은 같이 있었겠지, 라는 또 하나의 꿈. 그 꿈은 비현실적인 허상 속에서 표현된다. 너무나도 아름답지만, 무대 위의 공간에서만 이루어지는 둘의 이야기. 직설적으로 이건 환상이야,라고 보여주는 영화 앞에 사람들은 무너지고 만다.
연주를 끝낸 세바스찬과 미아는 잠시 눈을 마주친다. 슬픔보다는 받아들임, 지금 이 길을 가야 한다는 이해의 표정을 짓는 둘. 그리고 이 둘을 감싸는 파란색 조명, 이 둘이 처음 만났을 때, 아직 여리고 꿈이 흔들리기 이전의 자신들이 입었던 옷의 색.
그래. 우린 이뤄지진 못했지만, 그래서 더 아름다웠던 거야.
어떻게 보면 감독은 스토리 적으로 빈약하고 완만했던, 영화의 제목과 같은 환상적인 꿈의 세계를 마지막 순간에 깨트림으로써 우리의 감정선을 무너트린 것은 아닐까. 부족했지만, 그 부족함이 있었기에 더욱 아름다웠던 이 둘의 이야기처럼, '라 라 랜드'는 부족했기에 더욱 아름다운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