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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온 Dec 24. 2016

일어나지 않았기에 더 아름다운.

영화의 마지막이란. '라 라 랜드'.

주의1: 본 문서에는 영화 내용 누설이 있습니다.

주의2: 영화를 보지 못한 분들은 한번 보고 오시는 것을 권장합니다.


나는 '라 라 랜드'(Damien Chazelle 감독, 런타임 126분)를 영화관에서 3번 봤다. 처음 볼 때는 혼자 보고, 두 번 째는 친구와, 마지막은 다시 혼자 봤다. 처음 영화를 본 나는 감독의 치밀한 연출에 감탄하면서 정말 매료됐다. 친구랑 같이 이 영화를 보고 나는 친구도 나와 같은 감동을 느꼈기를 내심 기대하면서 어땠냐고 물어봤다.

"어때? 완벽하지 않아?"

그러자 친구가 하는 말,

"음... 잘 만든 건 알겠는데, 만점을 주고 싶진 않아. 왤까?"라고.

"왜... 도대체 왜 만점을 주지 못하는거야...?" "나도 몰라...!"

나는 그 말이 걸려서 그 날 심야로 한 번 다시 이 영화를 봤다.

왜 나에겐 이 영화가 완벽하게 느껴졌을까. 근데 왜 만점을 주고 싶지 않을까. 사실 생각해 보면 당연했다. 이 영화는 내러티브(스토리) 면에서 빈약하고 비현실적이다. 서로 안 좋은 첫인상으로 만난 두 사람이 야경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서 춤 한번 췄다고 가까워지고, 친구가 밴드 하자고 했는데 처음 시작한 밴드가 세션한테 주당 1,000달러를 챙겨줄 수 있고,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심지어 뻔한 갈등 구조, 그리고 쉽게 해결되는 갈등. 그런데 왜 이 영화는 아름답고, 평이 좋을 수밖에 없을까.


아마 이 영화의 끝만큼은 아름답고 비현실적인 이야기와는 달리 너무나도 현실적이기 때문이 아닐까.

미아(Emma Stone)와 세바스찬(Ryan Gosling)이 처음 키스를 한 그리피스 공원. 밤에 이 공간은 꿈과 환상을 이야기한다. 둘은 플라네타리움을 틀고, 하늘로 날아오른다. 별 사이에서 춤추는 둘, 아름답지만 말 그대로 꿈일 수밖에 없는 순간을 이야기한다. 나중에 이들이 이별 후 낮에 만나서 그리피스 공원을 올려다보면서 하는 말이 심장에 파고들었다.

세바스찬: Not much to look at, huh? 별로 볼 거 없지?
미아: I've seen better. 이보다 좋은 것 많이 봤어.

그들의 아름다웠고 애틋했던 밤(꿈)의 추억은 낮(현실)에 보면 별거 아니었다는, 그런 자각의 순간이다. 이 사실을 더욱 직설적으로 보여준 것이 이 영화의 끝 장면이다. 미아가 남편과 함께 세바스찬의 클럽에 앉아 회상을 하는 장면. 이 모든 것은 우리가 혹시 그랬더라면, 하는 가정을 하고 시작한다.

마치 영화 'Singing in the Rain'이 생각 나는 장면. 이 소품들과 허상 속에서만 미아와 세바스찬의 사랑이 이루어진다. 

만약 세바스찬미아가 처음 마주쳤을 때 차갑게 어깨를 부딪치고 지나가지 않고 뜨겁게 입맞춤을 했더라면. 만약 세바스찬키이스(John Legend)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고 미아 곁을 지켰더라면. 만약 미아의 연극이 성공적으로 진행되었더라면. 둘은 같이 있었겠지, 라는 또 하나의 꿈. 그 꿈은 비현실적인 허상 속에서 표현된다. 너무나도 아름답지만, 무대 위의 공간에서만 이루어지는 둘의 이야기. 직설적으로 이건 환상이야,라고 보여주는 영화 앞에 사람들은 무너지고 만다.

연주를 끝낸 세바스찬미아는 잠시 눈을 마주친다. 슬픔보다는 받아들임, 지금 이 길을 가야 한다는 이해의 표정을 짓는 둘. 그리고 이 둘을 감싸는 파란색 조명, 이 둘이 처음 만났을 때, 아직 여리고 꿈이 흔들리기 이전의 자신들이 입었던 옷의 색.

그래. 우린 이뤄지진 못했지만, 그래서 더 아름다웠던 거야.

어떻게 보면 감독은 스토리 적으로 빈약하고 완만했던, 영화의 제목과 같은 환상적인 꿈의 세계를 마지막 순간에 깨트림으로써 우리의 감정선을 무너트린 것은 아닐까. 부족했지만, 그 부족함이 있었기에 더욱 아름다웠던 이 둘의 이야기처럼, '라 라 랜드'는 부족했기에 더욱 아름다운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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