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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리니 Nov 03. 2021

선생님, 개념이 뭐예요?

내가 아이 낳는 것을 2년이나 고민한 이유

육아휴직을 앞두고, 아는 분들께 인사를 드렸다. 한 분이 출산을 축하하시며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 가장 의미 있고 보람 일 아이를  낳아서 키운 거야." 라고 하셨다.


만삭의 초산 임산부였던 나는 그 말이 당최 와닿지 않았다. 고해성사하는 기분으로 고백하자면 속으로 비웃기까지 했다. '인생을 살면서 얼마나 이룬 것이 없으면 이 낳은 것이 가장 큰 자랑일까?'


우리 부부는 결혼한 지 만 3년이 되기 하루 전, 첫 아이를 만났다. 신혼 때부터 남편은 자신을 꼭 닮은 아들을 바랐다. 아빠와 아들이 커다란 배낭을 나눠 매고 산으로 들로 숲으로 함께 다니는 꿈을 꿨다.


나는 아이를 낳아 키우는 일이 몹시도 두려웠다. 나는 어릴 때부터 늘 불안했고, 무언가 시작할 때면 걱정과 염려가 앞서는 사람이다. 그런데 아이를 낳아 기르기까지의 모든 과정 살면서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낯선 일 투성이다. 통제되지 않는 그 상황을 맞닥뜨릴 용기가 섣불리 나지 않았다.


더군다나 아이의 아이스러움, 그 유치함이 그렇게도 불편했다. 지역아동센터에서 봉사활동을 하거나, 동네 보습학원에서 아르바이트로 강사를 하며 다양한 나이대의 아이들을 만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아이들과 대화할 때 어른의 언어 아이들의 언어로 바꿔 말하는 것이 영 어색하고 불편했다. 어른들의 대화에는 추상적인 '개념어'가 많이 등장하지 않는가? 아이들과 대화할 때는 그런 류의 단어들을 쓸 수가 없다. 알아듣지를 못하니까. 일일이 직관적인 단어들로 바꾸어 설명을 하는 일이 귀찮고 번거로웠다.


예를 들자면,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은 "개념"과 같은 단어를 몰라서 "선생님. 개념이 뭐예요?"라고 물으며 천진난만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면 난감해진다.  사전에 나온 것처럼 "응. 일반화되고 추상화된 생각이 바로 '개념'이란다."라고 답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나는 아이에게 쉽게 풀어 이해시키는 과정이 번거로울뿐더러 그럴만한 재주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모두 알다시피 아이들의 집중력은 10초나 될까 싶을 정도로 짧다. 내 붙잡고 설명한 들 아이가 하릴없이 멍 때 리거나 손장난을 헤대면 더 이상 말할 열의도 사라져 버리곤 했다.


그래서 나는 어른 수준의 대화가 가능한 중학교 3학년 정도는 되어야 가르치는 즐거움이 느껴졌다. 누구 말마따나 정말 잘 가르치는 사람은 고3 학생이 배울 내용을 초등학교 1학년에게 이해시키는 사람이라는데, 그런 면에서 나는 아이를 가르치거나 돌볼만한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거기에 우여곡절 많은 세상에서 내 인생 하나 건사하기도 아슬아슬한데 나만 의지하며 살아갈 가냘픈 인생상상만 해도 막막함 그 자체였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나 없이 살 수 있지만, 내가 낳을 아이는  동생이 늘 놀아달라며 나를 귀찮게 했듯 (지금은 누구보다 친한 친구이지만) 적어도 십 년간은 나에게 찰싹 붙어 있을 것이었다.


공부엔 방학이 있고 일에는 휴가가 있는데 육아엔 잠시의 쉼도 허락되지 않을 것이라는 막막함도 나를 주저하게 했다.


나는 일종의 건강염려증 환자인데 임신과 출산의 과정에 수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도 아이 낳는 것을 주저하게 되는 이유 중 하나였다.


'양수 색전증'

분만하는 도중 양수가 엄마의 혈류로 들어가 혈전을 일으켜 산모와 아이가 모두 위험해질 수 있는 상태.

양수 색전증은 예측이 불가하고 예방법도 없다고 한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양수 색전증에 따른 모성사망률 61%라고 한다.


이런 류의 희박한 가능성은 생각만 해도 몸서리쳐졌다. 임신중에 만난 의사 친구에게 '양수 색전증'이 고민이라고 했더니, 어이없어하며 차라리 산후우울증을 걱정하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지독한 산후우울의 그늘에서 몇 달을 헤매었다.)


그런 저런 이런 이유들로 나는 오랜 기간 아이 낳는 것을 주저했다. 그러다 결국 아이에 대한 남편의 확고한 열정과 한 번 사는 삶에 아이를 안 낳을 이유 또한 없지 않은가? 하는 생각에 어느 갑자기 아이를 가지기로 결정했다.


첫째 아이가 만 네 살이 다 되어가는 지금에서야 다시 고백하던데, 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 모든 일 중에 가장 의미 있고 보람 있는 일은 아이를 낳아 기른 것이다.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은 어느 정도 사실이었다. 그 이상인 경우도 있다.


육아는 정말 고되고 고되다. 상상 그 이상이다. 각오를 단단히 하는 게 좋다. 아니 어쩌면 아예 생각을 안 하는 것이 좋다. 고민할 시간에 자유와 젊음을 즐기며 나가 놀아야 한다. 고3 수험생이나 야근을 밥먹듯이 하 더럽고 치사한 꼴 참아내야하는 직장생활만큼이나, 어떤면에서는 그 이상으로 엄마생활은 치열하다.


엄마의 젊음과 체력을 온전히 갈아 넣어야 아이 하나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재우는 일이 가능하다. (내가 육아에 소질이 없어서 그렇지 손쉽게 하는 사람도 분명 있긴 겠지.)


아이가 협상을 배우면 일은 더 커진다. 아이를 돌보는 데 필요한 체력아이를 내가 원하는 자리로 데려오는데 쓰이는 정신적인 에너지 소모가 너무 크다.


반면 생각보다 아이와 대화는 어렵지 않다. 오히려 아이와 이야기하는 일은 정말 즐겁다. 아이의 상상력은 나보다 훨씬 크고 제한이 없어 아이의 머릿속을 엿보는 일은  재미있다. "엄마 하늘에서 달 방울이 떨어져요." 이런 말을 어떻게 생각해내겠는가?


아이는 엄마의 시간과 에너지를 삼키는 대신 더 큰 것을 돌려준다. 어떤 상황에도 엄마를 웃게 만드는 것이다. 남편과 '그때 우리가 전세연장을 하지 말고 집을 샀어야 해'와 같은 류의 삶의 근심거리에 대해 이야기하다 마음 모가 날 때도, 곤히 잠들어 있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 그저 행복해진다. 전세살이의 설움도 곧 잊힌다.


아이가 나를 보며 웃으면 세상 모든 걱정 근심이 잊힌다. 펑펑 울다가도 웃게 되는 마술 같은 힘이 있다.


육아나 집안일에 몸과 마음이 지칠 때 침대에 벌렁 누워 "엄마 에너지 충전이 필요해." 라도 외치면 후다닥 달려와 내 품 안으로 쏙 들어오는 존재. 신기하게도 봉봉이(첫째아이) 에너지 충전 1분이면, 다시 몸을 일으킬 힘이 솟고, 어지러운 마음도 정돈이 된다.


잠들기 전 옆에 누워 내 얼굴을 유심히 보다가 "엄마, 사랑해요. 엄마가 있어서 행복해요."라며 품속으로 파고드는 존재. 아이가 나에게 전하는 사랑의 말과 손짓이 내 삶의 생채기어루만지고 싸맨다.


삶의 어느 순간에 이 시기의 작은 아이만큼 나를 온전하고도 완전하게 사랑하는 존재를 만날 수 있으랴. 아이의 세상엔 내가 전부나 다름없으니 말이다. 매일 이런 사랑을 경험하며 산다는 것이 삶의 의미이고 보람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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