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나 - 아홉 개의 색 아홉 개의 가구 展]
아껴 읽는 책 중 무라카미 하루키의 '무라카미 T(내가 사랑한 티셔츠)'라는 책이 있다. 무엇을 모으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자 작가가 소재를 찾는 방법을 엿볼 수 있기에 이 책을 애정한다. 그리고 그 대상이 '티셔츠'라는 점에 특히 열광한다. 누구나, 쉽게 구매할 수 있는 티셔츠로 에세이를 펴내다니. 티셔츠 구매에 둘째가라면 서운한 사람으로서 부러울 따름이다. 실제로 하루키가 가장 아끼는 티셔츠는 마우이 섬 시골마을의 자선 매장에서 구매한 'Tony Takitani'티셔츠다. 그는 토니 타키타니가 누굴지 상상하면서 단편소설을 썼는데 그 단편이 영화로까지 제작됐다. 단돈 1달러의 티셔츠 컬렉션이 이뤄낸 결과치곤 꽤 팬시(fancy)하지 않은가.
한국을 대표하는 화백 김환기 선생은 달 항아리 수집가로 정평이 나 있다. 그는 일본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후 1940년대부터 백자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된다. 특히 큼직한 백자인 백자대호나 백자원호를 사랑했는데, 너무 사랑한 나머지 '달 항아리'라는 애칭을 만들어 붙여줬다. 우리가 아는 달 항아리라는 명칭이 이때부터 시작됐다. 환기의 집은 소위 '항아리 집'으로 통했다. 집안 곳곳에 달 항아리가 가득 들어차있었고, 이 항아리는 달이 되고 항아리가 되어 환기의 작품에 따스히 스며들었다.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만난 박미나 작가는 물감을 수집한다. 그녀의 물감 수집은 한 사건으로부터 시작됐다. 학업을 마친지 얼마 되지 않았던 어느 날, 그녀는 갤러리 관계자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작가님 혹시 오렌지 페인팅 있으신가요? 오렌지 컬러가 쓰인 그림은 한 점 있는데요. 가로로 걸리는 그림인가요? 세로로 걸리는 그림입니다. 아 그럼 안되겠네요. 단순했던 전화 통화는 그녀의 작가적 호기심을 자극했다. 오렌지 페인팅은 뭘까? 그 길로 시중에 유통되는 오렌지 컬러 물감을 모두 사 모았다. 그리고 회사, 그 안에 색상 이름을 알파벳 순으로 정리했다. 그리고 그 순서대로 스트라이프 선을 차례로 그어 작품을 완성시켰다.
작가에게 수집은 생존과 같은 이야기다. 좋아서 혹은 궁금해서, 그것도 아니면 그저 모으다 보니. 수집의 계기는 저마다 다르지만 일단 어느 정도 모이고 나면 영감의 원천이 된다는 사실은 모두에게 유효하다. 무엇이 돼도 좋다. 흥미가 가는 것을 조급하지 않게 천천히 수집해 보자. 그리고 나만의 은밀한 이야기를 만들어 보자.
박미나 - 아홉 개의 색 아홉 개의 가구 展
2023.07.28-10.08
아뜰리에 에르메스(메종 에르메스 도산파크)
무료전시(예약 불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