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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보퓨레 Oct 01. 2024

선배가 말했다. 나 클래식한 손목시계 하나 사고 싶어.

슈타이들 북 컬처: 매직 온 페이퍼 展

"나 클래식한 손목시계 하나 사고 싶어."

얼마 전 회사 선배가 이런 질문을 했다. 롤렉스, 오메가, 그리고 브라이틀링. 세 브랜드를 고민 중이라고 그는 말했다.


"지금 차고 계신 갤럭시 워치 너무 편하지 않으세요? 왜 기계식 시계를 찾으세요."

"나에게 선물을 하나 하고 싶어서. 아 그런데, 아날로그시계를 차는 이유가 뭐야?"

"그건..."


온갖 용어가 꼬여 들어갔지만, 정리해 보면 그가 원하는 것은 기계식 아날로그시계였을 것이다. (럭셔리를 조금 곁들인...)

기계식(메카니컬) 시계는 태엽이 풀리면서 생기는 동력으로 움직이는 것을 의미하고, 아날로그시계는 시침과 분침으로 인식하는 시계를 의미한다.


질문을 단순화시켜봤다.

아마 '그래 네가 말하는 그런 시계가 핸드폰 시계보다 나은 게 뭔데?'이지 않을까?

'고독한 현생을 살아가는 직장인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건 내 손목에서 힘차게 심장 뛰며 달리는 시계뿐이다.'

바이어로 근무할 시절에는 이런 답변들이 자동으로 나오곤 했었는데, 지금은 어떤 생각으로 나 스스로도 시계생활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고민 끝에 이런 결론을 도출해 본다.

'나는 아날로그를 기억하려 하고, 디지털은 나를 기억하려 한다.'

(통상적 의미의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의미한다)


갤럭시 워치와 가민 등 이런저런 스마트워치를 경험해 봤다.

처음 이들을 편의성에 상당히 놀랬던 기억이 있다. 전화와 문자를 알려줘 놓치는 연락이 없어지고, 매일의 일상이 데이터로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너무나도 완벽했던 시계의 단점은 의외의 영역에서 드러났다.


매일 아침 입을 옷을 고르듯, 그날 착용할 시계를 고르고 멈춰 있던 시계의 태엽을 감아주고 시간도 맞추는 것은 내 아침 루틴 중 하나다. 스마트워치를 며칠간 찬 이후의 어느 날이었다. 그날은 기계식 시계를 차려고 하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며칠간 수면, 걸음수, 심박, 스트레스 데이터를 쌓아놨는데 이게 끊기면 손해 아닌가?'


... 반짝이는 얼굴로 나의 간택을 기다리던 라코의 플리거 워치는 다시 거치 위로 올라가 하루를 보내야만 했다.


前 시계 바이어라서 그런 걸까? 나는 기계식 시계에 많은 추억이 있다. 기계식 시계는 구매 후 4~5년 주기로 전체적인 유지보수 과정('오버홀'이라고 한다)을 신경써주기만 한다면 평생 사용할 수 있다. 실제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오래된 시계는 1950년대 초반 제작된 시계로 일 오차(시계를 맞춘 후 하루가 지났을 때의 오차)가 10초 내외로 아주 양호하다.


이러한 장점 덕분에 시계에는 추억이 쌓인다. 중요한 면접을 보러 갔던 날, 와이프에게 프러포즈를 했던 날. 그날 찼던 시계들은 나와 그 순간을 함께 했던 친구로서 평생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존재가 됐다.  


스마트워치를 착용하고 간 날은 기능적 편의성 덕분에 너무나도 든든한 지원군을 얻는 느낌이었지만, 시간이나 메시지를 확인하는 용도 외에는 손목을 쳐다보는 일은 없었다. 가끔은 너무 많은 알에 짜증이 나기까지도 했다.


스마트워치는 나를 옭아맨다. 내가 너를 이렇게 기억해 주는데, 내일도 나를 선택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렇게 모든 것을 기억해 줄 것처럼 굴더니 채 십 년을 못 버티고 명을 다해버린다. 실제로 배터리를 교체해 가면서도 스마트워치를 계속 살아있는 상태로 유지시키려 했지만, 결국은 스스로 파멸해 버리는 것을 불과 며칠 전에 경험했다. (7년 사용했다... 당연히 보내줘야겠지.)


출판업계의 레전드로 평가받는 게르하르트 슈타이들의 말이 떠오른다.

선배에게 이 말을 전해주면 가장 알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디지털은 잊기 위함이고, 아날로그는 간직하기 위함이다.”


슈타이들 북 컬처: 매직 온 페이퍼 展
9/4-25.2.23
그라운드시소 서촌(종로구 통의동 35-17)
유료전시(성인 17,000원)
10~19시(매월 첫 주 월요일 휴무)
ⓒ아보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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