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하차 알람을 껐습니다

행복을 찍는 사진작가, 안나 & 다니엘 展

by 아보퓨레

광화문에 위치한 디타워(D-Tower)를 스터디할 일이 있었습니다. 저녁 약속으로 몇 번 방문한 적이 있었던 곳이었죠. 인터넷 창을 켜고 디타워를 검색했습니다. 가장 먼저 드러나는 정보는 역시 건물 외관에 대한 설명더군요. 잠시 후 생각지 못한 설명글을 마주했습니다. '디 타워는 블록을 아무렇게나 툭툭 쌓은 것 같은 외관을 지녔습니다.'라는 문구였죠.


이런... 아무리 생각해도 저는 디타워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광화문 일대는 오피스 건물이 밀집된 지역이니 건물 외관이 눈에 띄지 않았을 수도 있었겠지요. 단순히 그 정도로 생각하고 이 일을 기억 너머로 흘려보냈습니다. 이후 디타워의 비밀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며칠 전 건강검진을 위해 버스를 타고 종로를 향했습니다. 목적지는 그랑서울로 디타워의 옆옆 건물쯤 되는 곳이었습니다. 언제나처럼 카카오 맵을 켜 목적지 설정을 한 후 '승하차 알람' 서비스를 켰습니다. 파란색 버스에 올라탔고 버스 안의 모든 사람처럼 스마트폰 화면에 빠져들었죠.


한참을 숏폼 컨텐츠에 허우적대다 승하차 알람 서비스 하차 알림에 황급히 버스에서 내렸습니다. 목적지는 정거장과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죠. 몇 걸음 걸어 건물 앞에 다다른 저는 깨달았습니다. 오늘도 목적지 건물이 어떻게 생겼는지 전혀 보지 못했다는 것을 말이죠.


건강검진이 마무리되고 저는 디타워의 생김새를 보기 위에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얼마 후 저 멀리서부터 건물이 보이기 시작했고, 온라인에서 봤던 설명처럼 블록들이 툭툭 쌓여 올려진 형태를 마주하게 됐습니다. 아, 이렇게 생겼었구나. 항상 핸드폰만 쳐다보다 목적지에 도착했으니 건물의 생김새가 기억에 들어왔을리 없었겠죠.


돌아가는 버스에서는 승하차 알람 기능을 껐습니다. 승하차 알림의 잘못은 아니었지만, 믿는 구석이 생겨 스마트폰에 매몰되는 행동을 자제하고 싶은 마음에서였습니다. 오랜만에 달리는 버스의 창밖을 내다봤습니다. 음악도 듣지 않고, 유튜브도 보지 않았죠. 나른한 오후의 햇살이 도로에 닿고, 상점에 닿았습니다. 한강은 고요히 흐르고 우리 모두는 부지런히 하루를 살아가고 있더군요. 이제야 도시가 크게도, 그리고 작게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안나&다니엘, <Faceade>, 2018 © 아보퓨레


얼마 전 관람했던 전시가 떠오릅니다. 스페인 출신의 젊은 작가듀오 안나 데비스와 다니엘 루에다의 사진전이었죠. 이 듀오는 일상에서 찾을 수 있는 다양한 소재에서 예술적 영감을 끌어냅니다. 특히 두 작가 모두 건축을 전공했기에, 도시의 건축물들은 이들의 날카로운 눈을 피해 갈 수 없을 것입니다. 건물의 창문은 사람의 눈으로 다시 태어나고, 안나 데비스는 스스로 모델이 되어 치마를 활용해 웃는 입모양이 되어 작품에 스며듭니다.


처음 몇 작품을 보고서는 피식 웃게 되는 아이디어와 위트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재미있네. 그런데 요즘 이런 건 흔하지 않나? 엄청나 감동이나 놀라움은 느끼지 못한 채로 적당히 재미있는 전시 정도로 생각하며 전시장을 나왔던 기억이 납니다. 오늘 다시 그들의 작업을 떠올려봅니다. 일상의 작은 단서들을 놓치지 않으려 모든 공간들을 유심히 살폈을 그들의 노력과, 그렇게 찾은 아이디어를 작품으로 구현해 낸 행동력 모두가 큰 의미로 다가오는 건 왜일까요.


이래 봬도 포브스가 선정한 30세 이하 유럽 예술가 30팀 안에 든 안나와 다니엘입니다. 그들의 노하우를 한 번에 다 실행할 순 없어도, 적어도 일상에서의 영감을 포착하는 노력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거리를 걸을 때 시야를 1층에만 고정하지 말기, 그리고 버스를 탈 때 스마트폰보다는 창문 밖에 시선을 양보하기. 만약 스마트폰을 놓는 것이 잘 되지 않는다면, 승하차 알람을 과감하게 꺼버리기.


행복을 찍는 사진작가, 안나 & 다니엘
2024.12.21 - 2025.03.30
화-일(10:00-19:00)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서울 서초구 남부순환로 2406)
일반 15,000원
안나&다니엘, <Rolling Strong>, 2018 © 아보퓨레
안나&다니엘, <Similaritree>, 2019 © 아보퓨레
안나&다니엘, <Mirrorcle>, 2022 © 아보퓨레
안나&다니엘, <Skirtmas>, 2020 © 아보퓨레
안나&다니엘, <Loading... Please wait!>, 2019 © 아보퓨레
안나&다니엘, <Hatventure>,2024 © 아보퓨레
안나&다니엘, <Pizza Hat>, 2024 © 아보퓨레
안나&다니엘 © 아보퓨레
안나&다니엘 © 아보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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