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에서 광주를 만났습니다

마당-우리가 되는 곳(Madang-Where We Become Us)

by 아보퓨레

여기 책 한 권이 있습니다. 비엔날레를 보러 베니스에 갔을 때 광주 비엔날레 전시장에 방문하여 받은 책자죠. 베니스에 광주 비엔날레라니... 이게 무슨 소리냐고요? 아무래도 뭔가... 이상하죠? 그럴까봐 제가 기념 책자부터 보여드린 후에 이야기를 들려드리려고 했답니다.


마당-우리가 되는 곳(Madang-Where We Become Us) 전시 책자 ⓒ 아보퓨레


광주 얘기를 하기에 앞서 낸시랭이라는 아티스트 이야기를 잠깐 해볼까요. 여러분 낸시랭이라는 예술가를 기억하실지 궁금합니다. 어깨에 고양이를 얹고 '앙!'하고 소리치는 예술가로 터부요기니라는 팝아트 시리즈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개인사가 더 화제긴 하지만...) 낸시랭은 2003년 베니스 비엔날레로 향한 적이 있습니다. 초청을 받아서 갔다면 더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그녀는 비엔날레의 정식 초청을 받은 작가는 아니었죠. 그녀는 전시관 입구에 자리 잡아 자신만의 예술을 펼쳐보습니다. 경극 배우 같은 화장에 과감한 비키니를 입은 그녀는 사람들 앞에서 바이올린 연주를 시작합니다.


행위예술을 펼치고 있는 낸시랭 ⓒ MBC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


사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베니스 비엔날레를 꿈꿨다고 합니다. 그래서 초대는 받지 못했지만 베니스에 찾아가 자신만의 예술을 펼쳐 보이기로 결심했죠. 그녀에게 베니스는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을 방해하는 존재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일까요. 그녀는 더욱 과감하게 이에 맞서기로 한 것이죠. 초대받지 않은 꿈과 갈등. 바로 이 행위예술의 작품명인데요. 스토리를 알고 보니 작가의 의도가 명확히 드러나는 제목이라는 생각이 들죠?


마당-우리가 되는 곳(Madang-Where We Become Us) 전시장 ⓒ 아보퓨레


광주 비엔날레도 낸시랭처럼 자신을 알리고자, 혹은 자신을 구속하는 것을 깨뜨리고자 베니스를 찾았을까요? 해석에 따라 맞기도, 그리고 틀리기도 할 것 같습니다. 광주 비엔날레는 우리에게는 무척 익숙한 행사죠. 말 그대로 2년마다 광주에서 열리는 미술 전시행사입니다. 바로 이 광주 비엔날레가 세계적으로도 꽤 잘 나간다고 하는데요. 광주 비엔날레는 아시아 최초의 비엔날레라는 역사적인 의미를 가짐과 동시에 세계적으로도 정상급 비엔날레로 꼽히고 있다고 합니다. 오,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행사라 이 정도였다니. 뭔가 뿌듯한 기분이 들죠?


광주 비엔날레 역대 전시 포스터 아카이빙 ⓒ 아보퓨레


그런 광주 비엔날레가 2024년 30주년을 맞았습니다. 그래서 광주 비엔날레는 비엔날레 계의 맏형인 베니스 비엔날레에게 이 소식을 알리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형... 나 축하해 줘. 어느덧 30주년이야." 이에 130주년이 된 맏형은 동생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그래? 축해해. 너 그럼 우리 비엔날레 병행전시로 선정해 줄게 한번 잘해봐."(베니스 비엔날레가 열리는 동안 베니스에서는 여러 전시가 도심 곳곳에서 열립니다. 베니스 비엔날레 측에서는 수많은 병행 전시 중 일부를 공식 병행 전시로 선정하고 있지요.)


2024년 광주 비엔날레 '판소리' ⓒ 아보퓨레


더불어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의 주제는 "어디든 외국인이 있다(Foreigners Everywhere)"였습니다. 서구 중심의 미술계를 극복하고 다양과 포용의 세계로 나아가고자 하는 의미가 느껴지는데요. 바로 이 주제가 광주 비엔날레가 표방하던 가치와 맞아떨어지기도 합니다. 2023년에 열린 14회 광주 비엔날레에서는 이숙경(영국 휘트워스 미술관 관장, 당시 테이트모던 수석 큐레이터) 총감독은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라는 타이틀 아래 원주민, 여성 등 다층적인 인류의 모습을 소개하기도 했죠. 당시 광주 비엔날레에서 소개된 마타호 컬렉티브(뉴질랜드 마오리족 여성작가 4인으로 구성된 작가그룹)가, 2024년 비엔날레에서 최고 영예인 황금사자상 최고작가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어쩜 보면 볼수록 광주 비엔날레의 실력이 대단하죠?


(좌) 2023년 광주 비엔날레 출품작, (우) 2024년 베니스 비엔날레 출품작, 모두 마타호 컬렉티브 작품 ⓒ 아보퓨레


물론 굳이 굳이 베니스에서 전시장을 열었어야 했냐는 비판도 있었지만, 저는 새로운 시도를 응원하는 기분으로 같은 해 열린 광주 비엔날레의 기념 에코백을 들고 전시장을 방문했습니다. 아쉽게도 현지에서 근무하시는 분들은 제 에코백을 알아보지 못하시더군요. 뭐 그게 중요한가요. 설레는 마음으로 내부를 찬찬히 살펴봤습니다. 광주 비엔날레 30주년 기념 특별전 <마당-우리가 되는 곳>은 광주 비엔날레의 역사적 아카이빙 자료와 연대기를 소개함은 물론 대표 소장품을 소개하는 전시입니다. 특히 광주 비엔날레의 설립과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설립에 주축이 되었던 백남준 선생님의 작품 <고인돌>이 전시되어 전시의 의미가 더욱 짙게 느껴졌죠.



백남준, <고인돌>, 1995 ⓒ 아보퓨레


나가는 길에 직원 분들께 제 에코백이 광주 비엔날레 기념품임을 알려줬습니다. 그러니 그들도 관심을 갖더군요. 오늘은 내가 왔지만 다음 비엔날레엔 광주에 놀러 오라고 말을 건네며 전시장을 나와 아르세날레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베니스에서 만난 광주는 저에게 반가움 그 이상의 감정이었습니다. 해외에서 고향친구를 만난 기분, 꽤 성공했음에도 꿈을 잃지 않고 정진하는 친구가 전하는 담담한 이야기를 듣는듯한 기분 말이죠. 소주 한 잔 기울이면서요.


광주 비엔날레 컬렉션을 완성한 아보퓨레 ⓒ 아보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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