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병명은 꾀병입니다

천경우, Bird Listener 展

by 아보퓨레


토요일 오전 아홉 시 반, 정형외과를 찾았습니다. 꽤 오랜 기간 손목에서 묵직한 피로를 느꼈는데도 이 죽일 놈의 게으름 때문에 병원을 방문하기까지는 수개월이 걸렸네요. 의사 선생님께 증상에 대해 간략히 말씀드리자 X레이를 촬영해 보자 하셨습니다. 손등, 손날, 손바닥을 차례로 촬영한 후 다시 진료실로 돌아왔습니다.


결과물을 한참 살펴보던 선생님께서 입을 열었습니다. 은근히 떨리는 순간이죠. "별 이상이 없으세요. 현대인들은 이 정도는 달고 삽니다." 이상이 없다는 의외의 답변을 들으니 좋으면서도 의아했습니다. 선생님 저 진짜 아픈데요? 스마트폰만 하면 손목이 아파요. "네 그게 요즘은 보통이에요. 약 처방해 드릴 테니, 절대 미리 드시지 마시고 통증이 심할 때만 드세요."


천경우, <엄지의 규칙>, 2023 © 아보퓨레


그래도 병원까지 왔으니 물리치료를 받았습니다. 기계가 내뿜는 찌릿한 전자파를 느끼며 생각죠. 아무리 생각해도 원인은 스마트폰인데. 그럼 어떤 것들을 바꿔야 할까?


의사 선생님 말을 다시 곱씹다가 힌트가 될 단서를 발견했습니다. 바로 '현대인'. 아, 현대인의 반대가 되면 되겠구나. 일단 회사에 머무는 시간은 현대인이 아닐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스마트폰으로 업무 메일도 쓰고 외근하는 날이면 카톡으로 동료들과 커뮤니케이션하기도 합니다. 그럼 현대인이 아닐 수 있는 시간은?


천경우, <엄지의 규칙>, 2023 © 아보퓨레


집으로 돌아온 이후에 현대인이 아니기로 결심했습니다. 먼저 음악 듣는 방식을 바꿨습니다. 원래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뮤직에 접속해 음악을 골라 블루투스 듣곤 했었는데요. 올해 CD플레이어를 구매하고 들을만한 CD 몇 장을 주문했습니다. 당근거래도 하구요. 이제는 노래를 바꾸려 스마트폰을 대신 CD더미를 뒤적입니다. 스마트폰을 들었다면 30분은 쇼츠와 릴스를 봤을지도 모를 일이죠.


그리고 전자책은 출퇴근 시간에만 읽기로 했습니다. 집에 와서는 종이책을 손에 들었죠. 전자책은 읽다 보면 어느새 인스타그램을 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할 때가 잦았거든요. 종이책을 읽을 땐 스마트폰을 일부어 저 멀리 충전기에 꽂아두었습니다. 단점은 책만 읽다 졸려 잠이 든다는 사실이었으나, 때론 단점이 장점이 되기도 했습니다.


천경우, <엄지의 규칙>, 2023 © 아보퓨레


이런 사소한 행동들이 도움이 되겠냐고요? 아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 공식 병명이 꾀병이기에 저만의 경험에서 탄생한 유용한 규칙(rule of thumb)들이 유의미할테니까요. 부디 여러분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현대인의 꾀병을 극복하시길 바랍니다.


천경우, <엄지의 규칙>, 2023 © 아보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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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경우, <엄지의 규칙 #1~#6>, 2023

사진 연작 <Rule of Thumb>는 동시대 주요 소통의 통로인 스마트폰과 인간의 관계에 관한 관찰입니다. 작품에는 6명의 다양한 인물들의 액정 속 세계와 마주하는 손의 형상과 시간이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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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명 'Rule of thumb' 의 사전적 정의

Rule of thumb는 경험에 기반한 일반적인 원칙 또는 대략적인 기준을 의미합니다. 이는 과학적 이론이나 정확한 계산보다는 실질적인 경험에서 나온 비공식적인 지침에 가깝습니다.


천경우, <엄지의 규칙>, 2023 © 아보퓨레


천경우, Bird Listener
2025.03.01 - 05.25
롯데갤러리 아트홀 잠실점 애비뉴엘관(6층)
매잉 10:30 - 19:00
무료전시


전시 포스터 © 아보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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