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피 폰 헬러만, 축제 展
'올해는 더위가 더 빨리 온다더니 벌써 한껏 여름인 것 같네.'
5월의 첫 번째 토요일 아침, 하프 마라톤을 뛰며 여름이 왔음을 체감했다. 땀을 한껏 쏟아낸 후에서야 결승선에 도달할 수 있었다. 메달과 함께 나눠주는 깡생수는 왜 그리 달디 단 것인지. 완주라는 천연 감미료가 든 음료를 마시며 후발 주자들을 기다렸다. 제법 빨리 뛴 탓에 친구들이 들어오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듯했다. 잠시 폰을 켜서 올해 더위 관련 정보를 찾아봤다. 어라, 5월 5일이 24 절기 중 7번째 절기인 '입하(立夏)'였구나. 입하라는 말 그대로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날이다. 역시 선조들의 정확성이란. 대회 다음 날이 입하인걸 알았다면 소매가 없는 싱글렛을 입고 뛰었을 텐데... 입춘은 챙겼어도 입하까진 관심조차 없었구나.
독일의 작가 소피 폰 헬러만 자신의 첫 한국 개인전을 열었다.
전시 타이틀은 '축제(Festival)'로 작가가 태어나고 머문 독일이나 영국의 축제가 아닌 우리의 명절을 조명한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전시장에 들어서니 익숙하면서 동시에 이국적인 작업들이 펼쳐졌다. 색동옷을 입고 그네를 타고 있는 도상은 친근한 풍경으로 다가오면서도, 색의 배합과 붓터치는 다른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지기도 했다.
작가는 우리의 축제를 '단오'를 중심으로 펼쳐냈다.
단오라니. 창포물에 머리 감는... 그 날? 여인네들이 그네뛰기를 하고 있는 작품 <단오> 앞에 서서 챗GPT에게 단오를 물었다. 음력 5월 5일인 단오는 일 년 중 양기가 가장 왕성한 날로, 더운 여름을 앞두고 건강과 풍년을 기원하는 벽사(재앙을 막는) 풍습과 민속놀이가 행해지는 명절이라고 한다. 검색을 하면 할수록 단오라는 명절이 보통명절이 아닌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
단오는 과거에 설과 한가위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우리나라 3대 명절로 위상을 떨쳤었다고 한다. 산업화로 인해 우리의 삶이 농경중심에서 벗어나게 되며 그 세가 약해진 듯했다. 공휴일로 지정되지는 않았지만 해마다 강릉에서는 '강릉 단오제'라는 대대적인 행사가 열려 그 명맥을 이어간다는 TMI까지 보고 나서야 부끄러움을 조금은 떨쳐내고 다시 작품을 바라볼 수 있었다.
오랜만에 다양한 감정이 복잡 미묘하게 올라왔다.
우리의 것을 몰라도 너무 몰랐던 스스로를 성찰하는 감정과, 자신의 첫 한국 개인전에서 오롯이 한국의 것들을 담아내준 작가에게 느끼는 고마움의 감정이 뒤엉켰다. 소피 폰 헬러만은 경칩, 단오와 같은 우리의 축제를 소개할 뿐만 아니라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에서 영감을 받거나 춘향전을 모티브로 작업을 할 정도로 꽤 많은 공부를 한 것으로 보였다. 작업을 보다 보면 독일에 신윤복 선생님이 재림하셨나 싶을 정도로 작품이 경쾌하고 익살스럽다. 작품들이 모두 사랑스러웠다. 할 수만 있다면 명예국민증이라도 주고픈 마음이 들 정도로.
전시가 진행되고 있는 스페이스K에 몇 번 더 가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소피 폰 헬러만이 말아주는 우리의 것들을 아낌없이 소화했을 무렵이면 마음속에 붙잡아 뒀던 작가를 다시 독일이나 영국으로 고이 보내드리오리다.
소피 폰 헬러만, 축제
2025.4.9-2025.7.6
스페이스K
10시-18시(월 휴무)
유료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