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주의 역사
나는 지금 베트남 후에의 저렴한 게스트하우스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후에에서 원래 1달 이상 머물까 하다가 비자런을 위해 보름 정도 묵기로 했는데 예약한 숙소의 소음이 심각해 집주인에게 와츠앱으로 컴플레인하다 갑자기 그녀의 남편이 나타나 삿대질과 쌍욕을 하며 나가라 했다. 살다 첨으로 퍽유 소리도 한 10번 넘게 듣고 경찰 부르려 했는데 부르는 방법도 모르고 진정하고 생각해보니 경찰이 별 도움이 될 것 같지도 않아 친구의 조언대로 안전한 장소로 빨리 이동했다.
자주 도시를 옮겨다니면서 내가 지나온 삶이 방랑의 역사 그 자체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부모님을 떠난 후 짧게는 1-2년, 길게는 4년까지 한 곳에 진득하게 산 적이 없다.
나는 언제나 돈을 아끼기 위해 저렴한 숙소를 찾아다니며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문득 내 거주의 역사를 한번 정리해 보기로 했다.
1. 기숙사
부모님 집을 떠나 대학을 다른 도시로 가면서 2인 1실의 기숙사에 입주하게 되었다.
처음으로 남과 함께 방을 공유하게 된 것이다. 룸메는 무남독녀였는데 어린 딸아이를 처음 객지에 떼어놓는 부모의 안타까운 눈빛이 아직도 기억난다.
학기 중엔 기숙사, 방학 땐 집에 가는 생활을 3년간 반복했다. 원래 1학년 때만 기숙사 생활이 허용되는데 기숙사 동대표라는 것을 얼떨결에 맡으면서 계속 기숙사 머물수 있는 특권이 주어져 휴학하고 미국 가기 전까지 계속 머무를 수 있어 새로운 집을 찾는 노고는 없었다. 기숙사 조교는 대학원생 언니들이 맡았는데 이때 훌륭한 선배들을 많이 만났는데 안타깝게도 지금은 다 연락이 끊겼다.
언니들이 해외로 유학을 간 동안 해당 국가로 여행을 가 잠시 만나기도 하고 이들이 교수가 된 후 공개된 이메일로 안부를 전하는 정도로 끝났다. 지금 생각하면 그녀들도 20대였고 어렸는데 어쩜 그렇게 어릴 때부터 훌륭한 인품과 인자함과 교양을 갖추었는지 갑자기 신기하게 느껴진다.
2. 친구의 집에 얹혀 살기
어릴 때 미국으로 간 친구가 늘 오라고 했고, 혼자 살고 있어서 갔는데 돌연 얼마 후 나가라고 해서 쫓겨났다. 어릴 때부터 나에게 온갖 선물을 주며 친해지려는 좀 비정상적인 사교 방식의 친구이긴 했는데 내가 그녀의 사촌언니나 다른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는 것을 못마땅해 했는지 당황했으나 다른 친해진 친구의 집 바로 옆에 새집을 구했다.
3. 중국인 집주인의 룸렌트
1층은 주인이 거주하고 2층 방 3개를 대학생들이 각각 하나씩 쓰는 형태였는데 좀 저렴한 편이었는지 흑인여성 1명, 흑인남성 1명이 룸매였다. 거인인 나보다 덩치가 컸던 흑인 여성은 하루도 빠짐없이 부엌에서 닭을 칼로 내리쳐 요리했는데 닭뼈 동강나는 소리가 무서웠다. 매월 집세를 낼때마다 1층 집주인에게 가면 집주인을 집문을 돈봉투가 들어갈 만큼만 열어주었는데 뒤로 짐이 엄청나게 쌓여있는 호더였다. 실물 호더 처음 목격.
4. 지하 원룸
한국에 돌아온 후 마침 친한 친구가 어학연수를 6개월 가게 되어 빈 원룸에 기숙사에서 친하게 지냈던 후배와 함께 지냈다.
5. 단칸방
첫 직장을 구해 인턴으로 일하게 되면서 회사와 가까운 지역에 벼룩신문이라는 매체를 통해 집을 구했다. 교회 바로 옆에 있는 목사님 따님 집의 입구방에서 6개월 살았다. 그때 왠지 고향에서 친구들이 서울에 올때 우리 집에 많이 와서 자고 갔던 기억이 있다.
그때는 지인이 있으면 가서 신세를 지는게 별로 미안한 일이 아니었나보다.
6. 옥탑방
인턴 후 취업으로 연결되지 않아 그곳에 머물 필요가 없어 백수 생활하는 동안 학교와 가까우며 절친 집과도 가까운 지역에 저렴한 옥탑방을 구했다. 절친들은 다 부모님이 서울에 집을 사줘서 아파트 거주 중이었는데 친구가 재미있겠다며 지는 옥탑방에 안 살면서 나에게 옥탑방을 추천했다. 친구의 남친들이 이사를 도와줬던 기억이 있는데 왜 내 친구들은 자기 남친들에게 내 이사를 도와주라고 했을까. 나도 물론 다 아는 애들이었지만 지나고 보니 노동에 동원된 그들에게 조금 미안하다.
역시 부모가 사준 강남 아파트에서 살던 남친이 이 집에 와보고 '너도 엄마한테 집 구해달라고 해. 왜 이런데 살아?'라는 말을 했지만 나는 진심으로 아무 생각이 없었다.
나는 십대 때부터 남과 비교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달은 바가 있다. 왜 알게 되었는지는 잘 기억이 안났고, 중요하지 않은 말들로 본인과 남들을 피곤하게 하는데 나는 피곤한게 정말 싫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피곤함에서 탈출해 막연하게 절에나 들어가고 싶었다.
동생이 어릴 때 뜬금없이 실업계 고등학교에 진학한다고 하여 가족들이 다 놀란 적이 있다. 나는 이후 어른이 되어 너 그때 왜 그랬냐고 물어봤는데 자기는 우리 집에 돈이 없다는 것을 알았고 부모가 매일 다투는 이유가 돈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나는 눈치나 철이 없었는지 사실 잘 몰랐다. 부모님께 뭘 사달라 하면 부모님이 돈 없단 말을 안하고 사주는 편이라 깨닫지 못했는데 사실 그때 부모님은 빚에 쪼들릴 때였다.
세상의 부모님들은 십대 정도 되면 애가 말귀 알아들을 때니 가정의 재정상황에 대해 자녀에게 설명해주고 이해를 구하는 것이 좋을 듯 하다.
옥탑방은 한여름에 아주 뜨겁게 데워져서 더운 여름과 습도를 사랑하는 나였으니 견뎠지, 더위 타는 남자들은 살기 힘든 곳 같다.
7. 지상 원룸
중소기업 규모 회사에 몇년 다니자 월급이 좀 모여서 직주근접의 입지에 드디어 크게 불만을 가지기 어려운 무난한 빌라 원룸으로 옮기게 되었다. 이 때 중학교 동창 한명이 아주 장기간 몇달 동안 나의 집에 와서 삐댔는데, 작가 지망생이었다. 당시 나도 별 생각이 없었는데 몇달이 흐르면서 돈 한푼 내지 않고 염치 없이 매일 술마시던 친구에게 본인의 집을 구할 것을 권했다. 내 책도 가져갔는데 이후에도 돌려주지 않았다.
8. 투룸
배가 불렀는지 모든 것이 한공간에 다 모여있는 원룸 스타일의 집이 심각하게 감옥처럼 답답하게 느껴지기 시작해 침실과 거실이 분리된 집을 찾았다. 대학원에 다니는 동안이라 시간도 많고 밤마다 작은 방에서 컴으로 맞고를 쳤던 기억. 금호동이라 입지도 좋고 모든 면이 좋았으나 탑층이라 도둑을 한번 맞은 적이 있다. 빌라 탑층만 털고 간 사건이었는데 우리 집은 문고리를 부시다가 실패해 진입은 하지 않았지만 공포감을 주기엔 충분했다. 밤늦게 퇴근하고 왔는데 열쇠를 넣고 열려는데 구멍이 뻥 뚫려 있어 식겁했다.
아랫집에 미용사 여자분이 살았는데 같이 인터넷을 공유하기도 했다.
집주인이 재개발을 노리고 투자한 빌라였는데 전세 계약이 종료될 즈음 재개발 기미가 없자 집주인이 나에게 매수하라고 강하게 권했는데 사지 않았다. 지금도 아파트로 변신은 실패했지만 금호동 땅값은 많이 오른 것 같다.
9. 절친과 빌라 전세
친한 친구와 함께 살게 된 것은 처음이다. 친구가 워낙 성격이 좋아 별 문제가 없었지만 돈 계산이 명확치 않고 나만 직장이 있다보니 내가 자꾸 금전적으로 더 부담하는 일이 생겼다. 절친과의 동거는 비추.
10. 사택
회사 사택에 거주한 경험이 있다. 집주인이 나보다 어려서 당황할 필요가 없으나 당황했다. 남들과 비교를 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예상치 않은 순간에 나도 모르게 비교를 하는 것 같다.
11. 교통이 불편한 곳의 저렴한 자가 아파트
전세가 폭등해 회사 지원금 내의 사택에 살수가 없어 회사 근처의 전세를 알아보다 전세가보다 저렴한 매매가의 아파트를 발견했고 내가 무엇보다 중시하는 공기가 좋은 곳이라 첫 아파트를 구입했다. 네이버 지도에서 초록색인 곳이 공기가 좋을 것 같아 찾아갔다. 솔직히 나는 대만족이었으나 투자 가치가 제로인 곳이다.
입주할 때나 거주할 때나 평생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으나 윗집 아이가 자라면서 친구까지 초대해 매일 뛰어대서 층간소음이 심해져 수면부족과 면역력 저하, 실실 아프기 시작해 서울시 소음 담당 기관 민원 및 경찰 신고 등의 과정에서 보복 소음이 더욱 심해져 결국 탈출 하게 된다.
이곳에 살며 다닌 마사지샵 원장님이 1-2천만원만 생겨도 갭투자를 하고, 그 분 집안 전체가 부동산 투자에 목숨거는 분들이라 이런 저런 이야기 주워듣고 부동산에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된다.
12. 투자를 위한 아파트
층간소음을 계기로 부동산에 관심을 가졌고 GTX 계획이 발표되던 시기라 마사지샵 원장님이 말한 아파트를 찾아가 보고 매물이 없는 와중에 1주일을 점심시간 쪼개 굶어가며 출근해서 한 부동산을 통해 집주인을 설득해 매수했다. 결론적으로는 재건축 진행이 지진하고 별 소득이 없다. 당시 강남에 진입을 했어야 하는데 이제 불가능해졌다.
하지만 은퇴를 하면서 더이상 투자에 온 신경을 기울이지 않고 싶게 되었다. 정기예금 이상 수익률이 나오면 인플레 헷지만 되도 현타 와도 진정하려고 노력하며 살고 있다 .
13. 가족의 투자를 위한 아파트
재테크가 아예 관심 없는 가족들에게 투자를 강요하게 된다. 그래서 마침 나와 가족의 직장이 바로 부근이기도 해서 회사 근처 소형 아파트를 매수했다. 거기서 회사 그만두기 전까지 기거했다. 회사에 도보 15분 이내인 편안함 대만족에 집주근접은 강추이다.
문제는 대출을 제대로 한번도 하지 않고 보유한 예산 내에서만 주택을 구입하는 어리석음이었다. 풀로 땡겨서 평생 갚으면 되는데 레버리지를 이 나이되도록 한번도 이용하지 않았다니 우리 집안 전체의 어리석음에 통탄할 일이다.
후배가 조언을 구한다면 제도가 허용하는 선에서 풀로 땡기라고 조언하고 싶다. 5년 이상 서울의 집을 사지 않은 가족에게 집 사라고 잔소리하다가 요새는 집사기 싫음 S&P 500만 장기로 하라고 조언하고 있다.
14. 코이카에서 지원해 주는 집
남미에 코이카 봉사활동을 갔을 때 예산 내에서 내가 출근하는 학교에서 도보 10분 내의 집을 구했다. 학교에서 집 구해주는데 도움을 주도록 지정된 직원이 어려 소개에 대한 커미션을 집 주인에게 1회성으로 주도록 협의했는데, 이십대 초반의 어린 여자애가 수개월 동안 집주인에게 돈을 뜯고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주경야독하는 여대생이라 돕고 싶었는데 호의가 호구를 만드는 경험이다. 웃긴 점은 집주인과 나는 영어로 대화할 수 있고 이 직원과는 휴대폰 앱 통역기로 경우 의사소통을 했는데 이 직원은 나와 집주인을 속이고 돈을 뜯은 것이다.
주변 교민들에게 이 이야기하자 이곳에서 이십대 초반 나이면 애셋은 낳고도 남을 나이에 산전수전 다 겪은 나이라고 한다.
서울의 모든 짐과 가구 가전을 정리하면서도 나는 잠이 중요해서 베개를 버리지 않고 남미까지 가져갔다. 오래된 베개라 그나라의 활동이 끝나면 부피가 큰 베개를 버릴 예정이었으나 20인치 기내용 가방 하나로 여행할 때도 버리지 않고 지금까지 나와 함께 하고 있다.
15. 남미에서 한두달마다 에어비앤비 전전
거의 한달에 한번씩 새로운 도시에서 새로운 집을 찾는 것이 얼마나 지겨운 일인지.
그리고 직접 보지 않고 리뷰나 사진만으로 집을 결정하는 것이 얼마나 리스키한 일인지 깨닫게 되었다.
16. 베트남에서 페북으로 집구하기
한국 갈 때는 부모님 집에서 신세를 지고 대부분은 물가 저렴한 베트남 여러 도시를 전전하고 있다.
베트남은 주로 페북 그룹으로 집 광고가 나오는데 미리 정하고 싶어도 정할 수가 없다. 1달-3달 계약하는 집들은 5-7일 전에 현재 거주인들이 나간다는 노티스를 하고 집이 빠지면 또 바로 입주하는 식이다. 주거지를 이렇게 직전에 구하는 시스템이라 조금 당황스러웠다.
단기거주는 구글 리뷰를 참고해 구하기도 하는데 베트남은 구글 리뷰가 활성화되지 않거나, 조작된 경우가 많아 신뢰하기 힘든 면이 있다.
17. 중국에서 트립닷컴으로 집구하기
중국은 외국인들이 머물 수 있는 숙소가 구분되어 있어서 트립닷컴에 올라온 집은 대부분 외국인 허용이라 트립에서 리뷰 검색후 더 저렴한 플랫폼으로 옮겨가 예약하거나 장기의 경우 위챗으로 연락해 네고 했다.
베트남이나 중국 모두 집주인이 담배를 엄청 펴대서 집안에서도 담배 연기를 피할 길이 없다.
그나마 주택이면 정원이 뻥 뚫려 환기라도 금방 되지, 고층 아파트나 대형 호텔은 화장실 복도 등으로 담배연기가 퍼져 숨쉬기 힘들 정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