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삶은 설계되고 있다. (feat. 케빈에 대하여/에반게리온)
새로 나온 닥터 스트레인지와 멀티버스가 보고 싶은데
마블 시리즈 27편을 다 보지 않으면 그 세계관을 이해할 수 없어서 재미가 없을 거라는 주변 분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영상물을 찾아보는 편이 아닌지라 마블 시리즈는 5편 정도 본 것 같다.
마블 시리즈를 좋아하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세계관'이야기를 꼭 하신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디아블로가 블리자드의 부정적 사건에도 불구하고, 끊지 못하고 마니아층이 확보되어있는 건 바로 그 세계관 덕분이지 않을까 싶다.
게임과 영화 속의 세계관, 태초에 그러했다는 세계관은 기독교의 세계관에서도 볼 수 있다. 기독교가 전 세계에 그렇게 뻗어나갈 수 있는 건, 단순 교리를 넘어서 세계관이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세계관을 통해 더욱 견고하게, 관념적인 그들만의 세상과 믿음이 형성된다.
이를 통해 깊은 유대가 생기게 되고, 혹은 전쟁이 발생하기도 한다.
우리의 삶 역시 마찬가지다.
태초에 엄마의 자궁이 있었고, 태아 시절 자궁이라는 세계에서 자연재해는 엄마의 감정, 엄마의 영양상태가 된다.
영화 '캐빈에 대하여'를 보면 자궁에서 생성된 태아의 세계관이 그들의 삶을 어떻게 만들어 가는지를 보여준다.
물론, 자궁을 벗어나 세상에 나왔던 영유아기에도 케빈은 엄마라는 신에 의하여 처단을 받았다.
그는 사이코패스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세계관은 그렇게 형성되어 온 세상을 적으로 만든다.
작고 힘없는 태아일 뿐인 케빈, 작은 아기일 뿐인 케빈이 엄마라는 신의 감정을 공감하는 순간
'엄마의 삶을 망친 저주받아 마땅한 존재'로 최선은 엄마 삶에서 사라지는 것 밖에 없기 때문이다.
내가 어디에서 왔고, 어떻게 자랐으며, 어떤 모습을 하고 있고, 어떤 삶을 살지에 대해서
나의 상황과 조건과 주변 인물들을 내가 정한 세계, 즉 나의 색안경으로 창조해 낸다.
에반게리온 TV시리즈의 마지막화는 그래서 경이롭고, 멋지다.
'네 마음이 그렇다고 정해버린 세계이다.', '사람은 자신의 작은 잣대로만 대상을 잴 수가 있어.'
거기서 나오는 연극무대,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부여한 역할, 타인에게 부여한 역할, 스스로가 창조해내는 상황을 멋지게 연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위에는 '이카리 신지'를 창조한 현실의 '안노 히데아키' 그리고 신
우리는 그래서 신이 되는 것이다.
게임을 처음 시작할 때 보면, 기본적인 시대적 배경, 사건이 제시되고, 개별 캐릭터를 생성하기 위해 직업을 고르고, 캐릭터를 다양하게 꾸민다. 기본적으로 부여된 성격적 특성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위에 나라는 사람이 플레이를 하면서 내 존재가 반영된다.
나라고 생각하는 우리의 몸이 사실은 현실이라는 창조된 공간의 게임 캐릭터일 뿐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러니까 영화 아바타처럼, 본체가 어딘가에 있는데 단지 아바타에 존재를 반영한 것뿐이라고 한다면?
이 모든 것이 스스로 선택하고 창조해 낸 것이라고 한다면,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삶에 중독되고, 빠져버리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제삼자의 입장에서 객관화하여 스스로를 바라보기 위해 명상 수련을 하면 보다 성숙한 삶, 즉 스스로 설계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그러니까, 삶에 지나치게 중독되어 있을 때, 삶에 의해 설계되는 대로 살게 되는 것이다.
그걸 어리석음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