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엄마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 수 있었다
IT분야 기술사는 이천 명이 좀 안 된다고 한다
특히 2016~2017년도 경에는 전체 합격률이 매우 낮았기 때문에
공부할 당시 함께하고, 특히 해당 시기에 기술사가 된 또래 여성 기술사 분들과 매우 친밀하게 지냈다.
그중 같이 공부하고, 필기에 같이 합격한 기술사 분이 있다.
나보다 3살 정도(나이는 잊음) 어린데, 매우 창의적이고, 똑똑한 친구였다.
면접 전날 우리 집에서 같이 자기로 하고, 어린이대공원 벚꽃 구경도 하고, 면접시간도 같아서 같이 들어갔는데 내가 먼저 합격해버려서, 긴 시간을 면접 준비로 인해 엇갈렸다.
당시 나는 컨설팅을 하다가 디스크로 인해 병원에 입원했었고, 함께 이야기를 하거나 만나는 시간이 급격하게 줄었다.
나의 상황을 변명하자면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나서, 마음도 몸도 정상이 아닌 상태였다.
사람이 힘든 시기를 겪으면 그럴 수 있다지만, 내가 생각해도 제정신은 아니었다.
친한 분들의 걱정조차, 힘겨웠다.
그런 상태에서 그렇게 가까웠던 그 기술사 분과 멀어지기 시작하자 서운한 마음이 깊어지게 됐다.
참 어린 마음이었다.
나는 왜 그때 그렇게 밖에 못했을까. 못되게 가치 돋친 말을 한 적도 있다.
어떤 상황이었든 그래서는 안 됐는데, 늘 후회스러운 일이다.
오늘 곧 결혼을 앞둔 그 기술사분의 청첩장 모임을 하고 왔다.
그 당시 서로 이야기하고, 사과하고, 다시 마음을 나누고, 무척 아끼는 존재이지만.
내겐 그때의 나의 부족함이 가시처럼 미안한 기억으로 박혀 있기에
여전히, 나를 언니라고, 내 덕에 기술사가 된 거라며 챙겨주는 모습을 보면
고맙고, 미안하고,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지 싶다.
그러다가 문득 엄마 생각이 났다.
우리 엄마가 이런 마음일까
철없고 어린 때 결혼해서, 세상살이가 힘겹고, 지쳐서
누군가 나의 힘듦을 알아주고, 이해해주길 바랐지만
그 누구도 없다고 느껴져서,
그래도 내 분신이라고,
너라도 나를 이해해달라고 떼를 쓴 게 아닐까.
가시 돋친 말은 양날의 검이다.
나 같은 사람들은 예민하고, 상처가 많기에
타인에게 모진 소리를 할 때, 내 마음도 아프다.
내가 계속 엄마에게 뭔가를 그저 주려고만 할 때,
엄마는 이 괴로운 마음을 느꼈던 걸까.
더 잘해줬어야 했는데, 내가 삶을 살아도 더 살았는데
'그때 왜 그렇게 밖에 못했을까'하는 후회와 죄책감과, 아직도 나를 저렇게 사랑해주는 모습이
오히려 불편하고, 죄스러워서
차라리 내게 밉다고라도 해줬으면 하는 마음일까
그저 고맙다고 했다.
나와 함께 해줘서 그저 고맙다.
마음이 저리고, 아픈 것은 그 예쁜 마음을 내가 다치게 한 죄책감 이리라.
예전에 내가 엄마에게 모진 소리를 하고 사과하자 말씀하셨다.
'서로 상처 주고, 받으며 사는 게 인생이지 뭐.'
그렇다 손 치더라도,
이만큼 미안하니, 미안한 만큼 더 많이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될게.
너의 삶을 늘 축복해, 늘 기도할게
내 곁에 있어줘서, 정말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