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925 왕멘토님과 치사

그 옛날의 기억

by Noname

기술사 공부를 할 때, 은사 분이 계시다.


큰 체구와 좋은 인상을 갖고 계신 그 분은

사람의 열정을 끌어 올리고, 최선을 다하게 만드는 신비한 힘이 있으셨다.


그래서, 그저 말 몇마디만 해주셔도 힘이 나고,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동기부여를 해주시는 분이셨다.


110회 기술사 필기 시험에서 아쉽게 불합격하고나서

스스로에 대한 SWOT분석을 마친 나는

더이상 왕멘토님 반에서 다음 시험을 준비할 수 없다는 결론에 다 다랐다.


그냥 학원 하나 옮기는건데,

온 몸에 진땀을 흘려가며, 다른 때보다 더 초집중해서 한 자, 한 자, 문자를 써내려갔다.

(정확히는 반을 옮긴 상황이긴 했다. 왕멘토님께서 별도의 학원으로 독립해 나가셨으니까)


3가지 이유로 더 이상 왕멘토님 반에서 시험을 준비하기가 힘들거 같다는 내용이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조성된 위화감과

그 속에서 또 조를 이루어 내공이 있는 멘티는 멘티들의 조장으로 스터디를 이끌어야했다.

그런데 그러기엔 내가 부족한 부분이 많았고,

내가 푸는 문제만 따라 풀면서 나보다 더 잘 적어내는 다른 멘티분들에게 '쫄아서'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학원을 옮겼지만, 왕멘토님의 멘토링을 받기 위해 모의고사, 특강 등을 듣기 위해서 매달 1-3번은 들랑달락 거렸다. 그때마다 왕멘토님은 늘 격려해주시고, 응원해주셨다.


왕멘토님의 한마디 한마디 놓치지 않기 위해, 말씀 들을 또박또박 답안지에 써서 붙여놓고는 매일 봤다.


그리고, 기술사 합격 후, 아버지께서 결국 다발성골수종3기 4년의 투병생활 끝에 돌아가셨다.

시골 출신에 항아리만 만드시던 우리 가족에게 조문객이 많을리가 없었다.


다행히 나의 친구들과 기술사분들께서 그 먼길을 마음과 시간을 내어 찾아와주시고,

부의를 해주신 덕에 아버지 가시는 길 적적하지 않게 보내드렸다.


그때, 근조화환을 보내주신 분이 왕멘토님이시다.

프리랜서 생활 중이라 어디 소속 되어 있지 않았고, 그 당시에는 특히나 일을 쉬고 있었다.

일주일에 몇번씩 당일 치기로 아버지께서 입원해 계신 홍성의료원을 다녀오느라 다른걸 할 여력이 없었다.


'주식회사 oooo' 그 근조화환이 어찌나 감사하던지

근조화환은 왕멘토님께서 보내주신 것과, 111회 동기회에서 보내준 것과 아버지 친목계에서 보내준 3개 뿐이었다.


참, 사람이 그랬다.

그런 사사로운 것들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해도, 내 일이 아니라 가족의 일이 되면 그런게 그렇게 신경이 쓰이나보다.


그래서 더욱 각별했다.

어느날 한번 오라고하셔서 치킨에 사이다를 사주신 날, 신이 나서 일기장에 적었다.


'왕멘토님과 치사'


왕멘토님 회사에서 함께 일 해보고 싶었다.

그렇게 대단하고 멋진 존재셨다.


2020년 6월에 허리디스크 자연치유가 마무리 될 무렵,

세상으로 나가서 일해야지하는 생각을 하자 2곳에서 제의를 받았다.


한 곳은 왕멘토님, 한 곳은 함께 공부했던 피엠님의 회사

교육과 품질관리 둘 중 고민하다가 교육을 택했다.


품질이 어렵다는 말을 익히 들었기도 하고, 사람 만나고, 상담하는 일을 했던 터라 교육을 해보고싶었다.


그러다 여차저차 왕멘토님께서 설립한 자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은 그 사직원이, 최종 승인이 된 날이며

왕멘토님께서 직접 커피를 내려주시며 면담을 한 날이다.


작년 초, 지금 살고 있는 곳으로 이사를 올 때는 내가 이직을 하리라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서울과 경기도 경계에 걸친 이 작은 마을에서 회사까지의 거리만을 생각하고 이사를 왔다.


회사에는 원래 생각하고 있었던 일이라고 둘러댔지만

그렇진 않았다.


어쨌든,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하고, 무엇을 말했든,

결국은 내 그릇이 작아 그들을 다 보듬지 못한 탓이다.


물론, 내 결정을 후회하진 않지만

왕멘토님과 치사를 했던 날의 그 감격과 감동의 순간이

생각나 괜스레 눈시울이 붉어진다.


믿고 맡겨주셨는데, 그래도 아무 것도 없는 회사에 많은 일을 하긴 했다.

잘했다. 일에 대해 후회는 없지만


스승의 날 꽃 한송이 보내지 않을 정도로 나는 감정이 매우 상해있었다.


하지만 그럴만 하긴 했다.


만감이 교차한다는 건 이런건가보다


그래도, 내가 존경해 마지 않던 왕멘토님의 일을 옆에서 배우고, 함께 할 수 있어 영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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