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프랑켄슈타인, 프로메테우스 1

신의 영역

by Noname

한병철 교수님의 '사물의 소멸' 마지막 몇 장을 읽으려고, 동네 커피숍을 향해 걷다가 문득


프랑켄슈타인이 떠올랐다.


그리고 문득, AI가 초래할 이슈가 그것과 매우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지 오웰의 '1984'는 너무나도 명백하게 빅데이터 세상을 예언했다면,

'프랑켄슈타인'은 너무나도 명백하게 AI와 메카트로닉스와 바이오공학의 세상을 예언했다.


물론, 프랑켄슈타인 교수의 피조물은 단 하나였지만 말이다.




종종 이런 생각을 한다.


전 세계가 네트워크로 연결되어야하는 이유는


그 자체로서 세상을 읽는 직관을 잃어가기 때문이고,

그 자체로서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어 있음이 끊어지고 잊혀지기 때문은 아닐까.


우리는 하나가 아니라

지구는 하나가 아니라

지극히 독립적인 개인이 되어버려서, 다시 그 옛날의 연결성을 찾기 위함은 아닐까.


전 세계의 정보와 온갖 쓸데없는 소리들이 하나로 모여 분석되되어야하는 이유는

더이상 지배체제 하에서 개별 인간들의 생각을 마비시키고, 정신적인 소비를 극대화시켜야하는 모종의 이야기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게 고대 로마에서부터 이어져온 지배 체제의 소산인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땐 3S 였지만


이제 그 3S는 Smartphone, SNS가 되었다. 나머지 S하나도 우겨넣고 싶은 지경




스마트폰에 의존하면서 사람들은 암기할 필요가 없어졌다.

현재의 나조차 생성형 AI에 의존하고 있는 상태라서 더이상 정교한 생각, 정리의 기술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


그저 개념만 흩뿌려놓으면 모든걸 AI가 정리해준다.


내가 해야할 일이라곤 일상의 자질구레하고 단순한 일들 뿐이다.


조만간 이런 자질구레한 일상들은 AI로봇에 의해 대체될 것이다.


현대 인간의 최대 고민인 외모와 늙음, 알츠하이머에 대한 공포는 바이오 공학에 의해서 곧 사라질 문제가 된다.

알츠하이머 조차 해결의 실마리가 풀리고 있는 시점이다.


그래서 다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정해진 루틴대로 단순하게 살기 위해 노력해보니, 눈앞에 펼쳐진 것들에 집착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도무지가 중간이라는게 없는 나란 사람이

이 험한 세상에서 '나'라는 존재를 잃지 않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깊은 생각'(거창하게 사색이라고 말하기엔 부끄러운)


나는 무엇을 잘하는 사람일까를 늘 생각하는데,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그 어린 시절부터 그냥 이런저런 사고의 편린들을 엮어내는 걸 잘하는 것 같다.


그런데 대학원 과제를 하다가 문득, 유치하기 짝이 없는 내 글을 읽어보고는


"내가 뭐라고 생성형AI가 정리해준 문서 대신 내 과제를 날 것으로 낸단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까지 의존할 것인지 그 선을 명확히 정해야할 것 같다.


블랙아웃이 된 미래 어느날에

인덕션 켜는 방법도 잊어버려서 로봇없이는 밥도 못먹는 신세가 될지 모른다는 상상을 해봤다.


그나저나, 인간은 신화 속의 신이나 귀족과 같이 고고하고 우아한 삶을 영위하는 한량인 상태로 AI로봇들에게서 방치되고, 양육받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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