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문제는 3년 후의 내가 그려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러 책들을 읽고 공부해 봤을 때 어쨌거나 나는 3년 후의 나를 그려내고 그에 따라 집중해서 뭔가를 해내야 하는데
도무지 그 3년 후의 내가 그려지지가 않는다.
그래서 당장 1년 후를 생각해보려고 해도 도무지 나는 거기에 없달까
습관화된 무기력이기도 하고
어쩌면 만으로 맞을 마흔을 기대하는 것일 수도 있다.
조문 외에는 별다른 이벤트가 없는 이 나이란
드물게 들려오는 아랫직급들의 결혼 소식이란 완전히 나와 관련 없는 기부이벤트가 되고
빈번하게 들려오는 부고 소식에 그저 장례식장 가서 아주 살짝 빈소를 보고 부러움의 시선을 던진 뒤, 역시 나는 장례 따윈 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결론과 장기기증을 위해선 고독사는 조금 곤란하다는 생각만이 스칠 뿐이다.
그러니까 온통 삶을 이어갈 생각이란 없으니 3년 후가 그려지질 않는 것이다.
이쯤 되면 이건 그냥 습관이다.
어릴 때부터 몸에 바디로션을 발라왔듯이
그냥 습관의 일부
그래도 늘 나의 몇년 후를 기대하기도 했었는데,
이제는 그 기대마저도 헛되게 느껴진달까
삶이 막아서면 이겨내거나 정면 돌파할 의지따윈 이제 더이상 없어져버렸다.
장기와 시신 기증 신청을 중학생때했으니 그때부터 장기를 잘 보존해야 한다는 강박이 자꾸 운동을 하게끔 만드는 것뿐이고,
그러니 엄마도 내가 죽을 걸 대비해서 생명보험을 들어놨었겠지.
빨리 죽어주지 못해서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가 종종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