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잘 운다 동물한정
“아니 왜 일회용 컵을 쓰지 않고, 그걸 세척하고 계세요?”
프로젝트에 잠시 파견 오신 타 팀 팀장님께서 텀블러를 씻고있는 내게 말씀을 건네셨다.
“아.. 그 환경보호…” 라며 말을 줄인 것 같다.
십 년 전이라면 피를 토할 지경으로 사람들에게 잔소리하고 텀블러 사용에 대해서 텀블러 고르는 법까지 줄줄이 이야기했겠지만 언젠가부터 내가 그럴만한 자격이 있나, 이 문명의 이기를 펑펑 누리고 여름이면 에어컨을 더 이상 마다하지도 못하는 처지의 몸뚱이가 되었는데 라는 생각에 그냥 만다.
뜬금없는 텀블러와 환경보호 이야기지만 사실은 펭귄이야기다.
북극곰과 펭귄을 매우 좋아했었다. 매우 상징적인 의미로
20대에 연애를 못한 데에는 이런 것도 꽤 컸다.
동물의 왕국이나 내셔널지오그래픽을 보며 자라고 집에서도 여러 가축도 키우고 시골이다 보니 온갖 곤충이며 파충류며 식물이며 너무도 가깝게, 그러니까 가족보다 더 자연에 마음을 주고 살았었으니까
이건 그냥 그런 이야기가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 근원에 대한 이야기랄까.
시골집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거미나 공벌레나 땅강아지라거나 뭐 그런 곤충까지도 나는 인사하고 반가워하고 재밌어하고 컸으니까
유일하게 내 의지로 죽이는 곤충이라곤 모기 밖엔 없다.
어쩌다 학교나 사무실에 벌과 같은 곤충들이 들어오면 그걸 꼭 제발 잡지 말라며 어떻게 해서든 밖으로 날려 보내야만 하는 그런 성미였으니
벌레를 무서워하는 연약한 소녀들과는 다르게 억척스럽고 유난스러운 편이었다.
그만큼 억척스럽고 유난스럽게 나는 자연을 그렇게 나 일부라고 느끼는 것도 같다.
내 주변에 나 같은 사람은 거의 없었으니
그러니까 이건 펭귄과 할아버지의 우정에 대한 이야기인데 당연히 그 옛날에도 봤던 이야기가 분명함에도
오늘 다시 본 나는,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렇게 무한의 사랑과 애정으로 팔천킬로미터를 수영해서라도 매년 만나야 하는, 그런 존재
사실 그러니까 에어컨을 집에 들여놓은 게 35세쯤이니까 그때부터는 떳떳하지 못한 마음에 너무도 미안해서 마음이 아파서 그 좋아하는 동물다큐를 못 보고 있다.
어쩌다 보면 결국 자연파괴와 인간의 과오로 넘어가게 가 되고 나는 또 너무도 미안하고 미안해서 그날은 또 하루 종일 땡땡 부운 눈으로 침울해져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냥 유튜브에서 살짝 쇼츠를 이렇게 보고
어쩌면 그저 도움 받고 시절인연이려니 떠나보낼 수도 있는 것을, 늘 그 커다란 사랑의 힘으로 헤엄쳐온 펭귄이,
어쩌면 내가 찾는 그런 사랑이구나 싶어서
그러니 인간에게선 도저히 찾을 수가 없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선 이젠 또 완전히 다른 의미로 눈물이 나더란 말이다.
어느 친구가 말했다.
누나는 누나가 주는 그 사랑과 인정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고, 고마워하고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고
그니까 역시 자연뿐이려나 싶다는 거지.
그런데도 또 무기력하게 누워서 역시 자연을 위해선 인간 개체가 줄어드는 것이 나으려나 하는 생각을 또 하게 된다는 그냥 그런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