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지덕지
1. 감탄하고 기를 세워주는 인격
오.. 역시 138!
친구의 아이큐를 언급하며 친구가 한 말에 감탄하자 다른 친구가 말했다.
아니 우리는 서로 놀리기 바쁜데 너는 다른 사람들이 부끄러워서 잘 못하는 감탄을 아무렇지 않게 해 줘서 사람들이 기를 살려주는 거 같아.
정작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있는 그대로의 감탄이었는데 그게 그렇게 되는 걸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 인격은 초등학생 시절 태웅이라는 친구가 늘 내게 보이던 반응이었다. 늘 내게 자연현상이나 뭔가 신기한 것에 대해 내 이름을 부르며 물으면 나는 책에서 본 것들에 대입을 해서 이건 이래서 그런 게 아닐까? 하고 말하면 그 친구는 내 대답에 신나 하면서 감탄을 해주었었다.
2. 냉정하게 비판하는 인격
그건 네가 이러저러하니까 그렇게 된 거 아냐?
누군가의 응석이 닮긴 어떤 하소연이나 타인에 대한 험담을 들으면 가끔 밑도 끝도 없이 시니컬하게 어쩌라고 하는 식의 반응을 하게 된다. 물론 그걸 입 밖으로 내뱉는 경우는 좀처럼 없지만
그때마다 초등학생 시절 학교에서 있었던 일에 속상함을 내비치면 엄마는 “네가 이상하니까 그래”라는 말을 하곤 했다. 그 모습이 나에게 덕지덕지 붙어있다.
3. 아픔을 인정하지 못하는 인격
종종 나는 내 몸을 돌보지 않는다. 그걸 엄살로 치부하다가 타인들의 성화로 쉬게 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건 서울에 대학을 와서 이모댁에 얹혀살던 내게 몸이 아파도 할걸 하라며 다그치던 이모와 또다시 초등학생시절 자전거 사고로 심하게 다쳐 얼굴이며 온몸이 상처투성이로 퉁퉁 부웠을때, 보고도 못 본척했던 엄마의 모습
4. 좋지 않은 상황이나 부족함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
고등학생 때였다. 한참 사춘기를 지나오던 우리 중 어느 한 친구가 어쩌면 부끄러울 수도 있는 어떤 일을 우리에게 귀엽게 웃으며 약간의 부끄러움 그러나 창피함은 아닌 상태로 말을 해주었다. 그게 참 사랑스럽다고 느꼈다. 그래서 나는 그 인격을 나의 어느 구석에 끼워 넣었다.
나의 어떤 모습들은 스스로 그게 사람들에게 위화감을 불러온다는 사실도 모른 채 지속적으로 노출하고 있었는데 결국은 그런 모습들은 다른 것들로 덮어씌우고 기워버리다 보니 내 속에 꼭꼭 숨겼다가 불현듯 튀어나와 미움을 사기도 한다.
엊그제 콘퍼런스에 갔다가 앞에 앉으신 분이 똑 부러지고, 똑똑하게 말을 하는 사람을 보고 난생처음 위화감을 느꼈다.
물론 내게도 있는 모습이고 그게 당연했던 때도 있는데, 아니 요즘엔 아는 게 없다는 걸 더 절실하게 깨달아가고 있어서인지,
어쩌면 나도 모르게 아무것도 없으면서 그저 뭔가 있는 듯 제 잘난 맛에 살다가 한풀 꺾이니 알게 되었달까
나라는 사람의 인격이란 참 억지로 끼워 맞추고 덕지덕지 기워 만든 허울뿐이었구나 싶다.
그러니 더더욱 글을 쓰는 것도 말을 하는 것도 자신이 없어진다.
나는 대체 뭘까 싶어지는 것이다.
그리하여 결론은 늘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에까지 이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