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내 동생이거든
엄마, 근데 그 애 생일이 언제였어?
4월 24일이었지
양력으로? 그럼 1987년 생이었나?
그렇지, 고맙네. 그렇게 그 애를 물어봐줘서. 그 애를 잊지 않아 줘서.
엄마, 내 동생이기도 하거든. 엄마만 가슴에 구멍이 뚫린 채로 산 건 아니야.
남동생이 세상을 떠난 지, 33년
이제야 겨우 아무렇지 않은 척, 딸아이는 동생의 이름을 입에 올렸다. 전화 너머 딸아이의 순간 울먹이는 듯한 소리를 들은 것도 같았다.
엄마는 차마 그 애의 이름을 입에 올리진 못했지만 못내 딸아이가 고마웠다.
이제는 아버지도 없으니, 그 애를 기억할 사람은 엄마 자신 밖에 없다고 생각했었나 보다.
딸아이는 7살이었고, 도무지 어린 시절의 기억을 하지 못하니 그럴 만도 했다.
아니 어린 시절만이 아니라 어딘가 기억이 사라지기라도 하듯 딸아이는 대체로 모든 걸 기억하지 못했다.
딸아이의 기억은 너무나도 단편적이어서 늘 되묻고, 또 되묻고, 이야기를 해줘도 기억하지 못했다.
저런 기억력으로 어떻게 공부는 하나 몰라.
그러니 더욱 세상을 떠난 그 아이를 기억할 사람은 엄마 자신뿐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태어나 다 피어보지도 못한 채 스러진 어느 영혼의 가장 안쓰러운 점은
그 사랑스러웠던 존재를 기억하는 사람이 없어지고 그렇게 흔적도 없이 모든 게 없던 일처럼 그렇게 잊힌다는 것이다. 아니 잊힌다는 것도 사치에 가깝다.
그 애의 아빠가 세상을 떠나고, 엄마는 더욱 그러했다.
남은 자식이 셋이니 뭐가 부족할까 싶지만 그래도 엄마는 못내 어린 시절 들꽃처럼 한철 피어보지 못하고 스러진 아들이 사무치게 그리운 것이다.
딸아이가 입에 올린 그 이름이 반가웠다가 순간 가슴이 찢기듯 아팠다.
딸아이도 엄마처럼 그 세월을 울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많은 시간 동안 왜 저렇게 예민하고, 쌀쌀맞기만 한지 유별나다고 핀잔을 주었던 그 성격이
결국 그 모든 아픔에서 비롯되었다는 걸 엄마는 그제야 알게 되었다.
딸아이도 엄마처럼 평생 뚫린 가슴으로, 언제 갑자기 사랑하는 사람이 사라져 버릴까 두려워 사랑도 하지 못하고 무서워서 사람들을 쳐내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