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란 착각
그녀가 말했다.
그를 사랑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가 행복하길 바란다고 했다.
비록 친한 친구 사이이지만
그 관계를 깰 수 없을 정도로
그녀가 품을 수 밖에 없던 온갖 의문들을
다 덮어을 수 있을 정도로
지나치게 그를 감싸고 있었다.
그건 평소의 그녀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우리는 그녀를 알 수 없었다.
도통 말이 없는 그녀는 속은 꺼내어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의 표정이나 행동이 너무도 너무도 투명해서
그녀가 우리를 싫어하거나 미워한다고 해도
우리는 그녀의 투명함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의 저 순수하고 맑음에 생채기를 내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그러나 매번 그녀는 말없이 자신의 동굴 속에 숨어들었다.
그러나 머리카락이 훤히 보였다.
마치 자신을 찾아 달라는 듯이, 꺼내어 달라는 듯이, 구해달라는 듯이
그도 그랬다.
착한 그녀를 지켜주고, 곁에 있어주고 싶었다.
그녀와 이야기를 하면 모든 게 괜찮아지는 것 같았다고 했다.
아니, 괜찮지 않은 상태로 머물러 미동도 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녀는 그저 포근히 안아주듯 알 수 없는 안정감과 편안함을 줬다고 한다.
사실은 그녀를 지켜주기 보다는 곁에 있어 주고 싶다기 보다는
그 핑계로 자신이 그 안정감을 얻어내고 싶었던 거라고 했다.
그녀가 세상 해맑은 얼굴도 똑바로 자신 쳐다볼 때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어떻게든 그녀만은 어떻게든 지켜주고 싶다는 마음이 솟아올랐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는 어떤지 그와 거리를 두려 했다.
그는 몰랐다.
자신의 퉁명함을 그녀는 알아줄 것이니,
아니 당연히 알고 있으니 상처받을 리 없다고 믿었다.
그는 그가 그녀에게 다다 가면 아무 일도 아니란 듯 받아줄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녀는 달랐다.
사실은 매번 상처받았으나 견딜 수 있는 만큼 견뎠고, 그 임계치가 넘어선 것이라고 했다.
그녀는 소리를 지르는 법이 없었다.
그러나 그녀의 경멸 가득한 시선은
그 누가 보아도 그때까지 모든 걸 품어주던 눈길과는 완전히 상반된 것이기에
차라리 칼에 베이는 게 나을 거라고 했다.
처음엔 어떻게 그렇기 됐는지 감을 잡지 못하던 그도 점차 기억을 떠올려내기 시작했다.
에둘러 거리를 두려 했던 이야기,
뜬금없이 아침부터 보내오는 논리적으로 정리된 문장이나, 그의 눈치를 살피고 있음을 알리는 류의 문자들
그게 그 모든 것의 전조였다는 걸 그는 그제야 알았다.
그녀는 언어로 모든 걸 표현했지만
그를 너무도 소중히 여겼기에 행동에선 어쩔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녀는 왜 그가 그렇게도 소중했을까?
아니, 그녀는 그가 소중했던 게 아니었다.
그를 통해 본
억눌러왔던 혹은 들키지 않게 잘 숨겨두었던
그녀 안의 어떤 모습.
그녀가 외면함으로써 빚어낸 “그”라는 조각.
그녀는 어떤 유대감이나 애틋함이나 측은함으로 그를 끊어내지 못했다.
그런 시선을 보내고도 그녀는 차마 그를 미워하진 못했다고 했다.
왜 그런지 자신조차 모른 채,
그녀는 또다시 “그”와 또 다른 “그”를 만났다고 한다.
그러니 사랑은 착각이었고,
그저 나르시시스트적인 자기 애착과 자기 연민이
뒤엉킨 집착
그녀는 평생 그걸 사랑이라고 믿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