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감
몸은 감정을 기억하고
감정은 상황을 기억한다.
상황과 감정의 연결이 끊어지면
그 감정과 상황은 억겁의 시간을 헤매게 되기도 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이유를 알 수 없는 괴로움과 분노에 휩싸이는 때가 있었고, 단지 그 감정이 저질러버린 결과에 대한 자기 비난에 움츠러들곤 했다.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괴로움은
때로는 집착적으로 누군가를 갈망하며 모든 걸 다 내팽개쳤는데 그 정도가 지나쳐해야 하는 일들을 미루곤 했다.
그리고 때로는 알 수 없는 불안과 두려움으로
온갖 트집거리와 근거를 찾아내 상대방으로부터 스스로를 고립시키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을 핑계를 대기도 했다.
그러니까 내게 해야 하는 일이란 핑계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 퀘퀘 묵은 감정
그 아이는 처음에는 무서워하는 아이였다.
누군가를 잃을까 봐 방치될까 봐 비난받고 버려질까 봐 두려운 아이.
어릴 적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동생에 대한 트라우마
내 삶에 가장 큰 오점, 내 인격형성에 있어 가장 큰 단점이자 장애물
그 감정만 아니었다면 나는 누군가를 만나서 행복하게 가정을 꾸리고 평범하게 살았을 거라는 원망과 비난의 대상
상담을 하면서 그 아이는 결국 내가 정말로 죽어버릴까 봐 타인에게 받는 상처를 감당할 수 없는 여린 마음을 지키기 위해 존재했던,
단전에서부터 뿌리 깊게 간절히 나를 살리고 싶어 했던
그 누구보다도 나를 사랑하는 든든한 아이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
정말 힘겹게 오로지 그 감정에서 벗어나기 위해 죽음을 꿈꾸며 살아왔는데
오히려 나를 살리기 위해 나를 애절하게 지켜온 그 감정
머리로만 이해하던 살아있어도 괜찮다는 말이
육체로 느껴졌다.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느낌,
존재의 묵직함
이런 게 현실에 뿌리를 둔 “살아있음에 대해 한 치의 의심도 없는 사람들”의 느낌이려나
아니, 아니, 그게 아니었다.
이 감정은 기억해내지 못하는 그 아주 어린 시절
나를 사랑하고
나를 아끼고
나를 지켜주던
내 곁에 늘 함께해 온
그리고 늘 나와 놀고싶어했던
그 아이
내 동생, 내 자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