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욕심만큼 잘난 사람이지 못해 미안해

by Noname

초등학생 때부터 좋아하는 것에 한해서는 스스로 공부하는 편이었다.

다른 집 아이들은 부모님께서 억지로 시켜준 학습지를 하거나, 학원을 다녔는데

우리집은 그럴 형편이 아니라는 걸, 7살 때 알았다.


그림을 제법 그렸던 나를 보고,

서울로 가서 이모가 아는 대학교 교수님을 소개해줄테니 미술 공부를 시키자던 이모의 말에 가득 기대했지만,

부모님께서는 너무나도 미안해하며 7살의 나에게 우리집 형편이 좋지 않아 그렇게 해줄 수가 없다고 하셨다.


그때부터였는지 모르겠다.

내가 원하는 것들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그저 내 마음에 품은 채,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내게 주어진 환경 내에서 '어디로든 길은 있다.'라고 믿었던 것 같다.


용돈을 모아 좋아하는 과목의 책을 사서 봤고,

그 당시 학교에서 하던 저금돈을 군것질도 하지 않고 6년 동안 모아 부모님께 그 돈으로 컴퓨터를 사달라고 했었다.


엄마는 늘 너는 군것질도 잘 하지 않고, 장난감도 사달라고 하지 않았다고, 사달라고 한건 책뿐이었다.


초등학교 4-5학년 때쯤 일이었다.

벽에 부딪혔다.

늘 1등을 했었기에 의기양양하게 어려운 수학문제집을 사서 푸는데, 혼자서는 도저히 풀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 나는 내게 그 이상을 할 능력은 없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뭐하나 꽂히면 매달려서 계속 고민하는 버릇 때문에 담임선생님은 나보다 못하는 아이에게 수학경시대회를 나가게 했고, 나는 그게 나의 너무나도 큰 문제점이라고 인식하게 됐다.


그때부터 안 되는 걸 빨리 포기하지 않으면 내 몫을 빼앗긴다는 인식이 생긴것도 같다.


그 뒤로 나는 빠르게 포기했고, 중학생이 되어서는 학업을 놓았다. 그래도 순위권이었으니 선생님은 날 불러다 공부를 하라고 설득했지만


어차피 집안 사정도, 내 능력도, 모든게 부족할 뿐인데 아무리 학교 공부를 해봤자 내가 뭐가 되겠나 싶었다.


'왜 해야하는 지 모르겠어요.'


고등학생 때까지도 나는 공부를 하지 않았다.


그래도 여전히 책을 좋아하고, 영어 독해문제집 읽기도 좋아하고, 사회과학이나 자연과학은 재밌어했기에

내신 성적은 보통이었지만 모의고사는 적당히 나왔다.


부모님께서 나를 대학교에 보내실 의향이 있으시다는 걸, 그때 너무 늦게 알았다.

잠깐 공부를 하려고 노력했지만 수학은 숫자만 보면 그 어린 시절 어쩌면 트라우마가 되었는지 머리가 멍해지고, 깜깜한 벽에 부딪힌 느낌이 들어서 도무지 더 할 수가 없었다.


숫자만 보면 혼자서 풀어내지 못하는 멍청이가 된 느낌이라, 알 수 없는 절망감에 빠지곤 했다.


다행히도 수학 점수를 제외하고 갈 수 있는 학교들을 골라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합격할 수 있었다.


그림도 역시 어린 시절 그런 기억이 있어도 그래픽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졌었지만

중3때 미술 선생님이 '그림은 잘 그렸고, 의미적으로 좋으나 이런건 아류에 속한다'며 D-를 주셨었는데

그 충격으로 성인이 되고나서도 10여년이 넘게 도화지만 보면 멍해져서 그림을 전혀 그리지 못했다.


그 외에도 중학생 때 실기 시험에 실패한 컴퓨터그래픽스 운용기능사 시험이나 뭐 그런 것들이 있다.

필기 합격후 2년간 실기를 볼 수 있었는데, 그 기회가 4번이었다.

시골에서 다른 도시까지 시험을 보러가야해는데, 감독관분이 잘하셨다고 까지 했는데 순전히 독학으로 공부한 그래픽툴 중 인디자인의 경우 당시엔 책도 자세히 나와있지 않았고, 어쨌거나 내 능력 부족이겠지.. 싶었다.


지금 보면 별거 아닌 스쳐지나가는 존재들에 의해서 나는 너무도 쉽게 부서졌다.


그보다는 사실, 내 안에서 도무지 혼자서는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는 무능력함을 마주하지 못할 정도로 나약했던 것 같다.


대학생이 되어 아르바이트로 수학학원에서 문제집을 타이핑하는 일을 했었는데,

그때 알았다.


도시 아이들은 수학학원을 다니면서 자신이 풀 수 없는 문제는 선생님께 도움을 받아서 풀어내는구나.


그때부터 가난하고 고립된 누군가에게 가르치는 일을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세네갈로 컴퓨터 교육 봉사를 다녀왔는지도 모르지.


내가 더 많이 알아야 어린시절 나와 같은 그 또래의 아이들에게 더 많이 가르쳐줄 수 있다며 기술사까지 취득했는데

그리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내 욕심만큼 나는 따라오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또 주저 앉았다.


이렇게 계속 사는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누군가에게 뭔가를 가르쳐주고, 해결해 줄 수 있을 정도로 잘나지 못했다.


그게 또 서럽고 한심하다.


그것보다는 이렇게 주저 앉아 버릴 정도로

내 앞 가림도 제대로 못하는 나약한 정신을 갖고 있다는게 견딜 수 없이 부끄럽다.

세상은 빨리 변하고, 나는 따라가기도 버겁다.


나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서 그 부분이 참 애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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