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증
무기력증에 시달리고 있다.
아마도 애를 쓰며 버텨낸 후유증이겠지.
정해진 루틴들은 습관처럼 하고 있지만
강박처럼 이젠 하지 않으면 꺼림칙하니까…
라기보다는 그것들 마저 하지 않으면 정말 무기력증에 압도되어 버릴 것만 같아서.
얼마 전 지인을 만났다.
연말이다 보니 송년회에서 뵌 여러분들을 보고 위축도 되어있었고, 여러 일들을 거치면서
벌써 9년이 넘게 가까이서 알고 지낸 분인데
너무나도 정확하게 내 상태를 꼬집어 주셨다.
“자유로우신 분이 왜 세상의 틀에 자신을 끼워 맞추려고 하시는 건지 모르겠어요.”
말씀대로 전에는 억울하다고 호소를 하고도 방긋 해맑게 웃었던 것 같다. 아니 그런 순간에도 그냥 새로 겪는 어이없고 화나지만 재밌는 사건 정도였다.
지금은 그저 일관되게 시니컬한 표정으로 한쪽 입꼬리만 치켜올리고 있으니 더더욱
아니 그동안 감정을 느낀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식으로 옆집 불구경하듯이 실제로는 하나도 느끼지 않고 오히려 감정 자체를 수치스러워하거나 거짓된 미소와 웃음으로 꾸며댔으니까.
늘 괜찮은 척하면서 버텼으니까
감정을 좋아하지 않았으니까
감정만 없었다면 난 꽤나 성공했을 거라고 늘 생각했었으니까
사실은 얼마 전부터 호르몬 조절용 약을 먹고 있는데, 아무래도 그 덕분에 내 본성이 나오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사춘기 시절 기본값인 냉소가 다시 튀어나왔달까.
평생을 애써 숨겨왔던 그 모습이 이젠 부끄러움 없이 튀어나와서 사랑받을 노력 따윈 이제 집어치우고 두며 대지 않는 상태가 되었달까
예민하고 까칠하고 염세적이며 저급하기까지 한
도무지 스스로를 통제하고 품위를 갖추려는 노력 따위는 하지 않는, 오히려 그래왔던 지난날의 모습이나 아주 잠깐의 노력마저도 스스로 조소를 날리고 있는
요즘 내 모습을 생각하면 내 인생이 망한 것만 같다고 느낀다.
꾸며대지 않는 내 모습이란 이토록 지질하고 저급한걸
받아들이고자 한건 아니지만 그 자체인걸
노력하고 싶지 않아
애를 써봐야 의미가 없어
어차피 수포로 돌아간다는 걸 깨달았거든
더 이상 애쓰거나 노력하고 싶지 않아.
그냥 하던 걸 할 뿐이고, 하려던 걸 할 뿐이고
그럼 이제 하고 싶은 걸 하면 될 것 같은데
그것마저도 주변 사람들과는 너무나도 결이 달라서
보여주고 싶지도 않고, 이야기하고 싶지도 않은 걸
이해받고 싶어서 그토록 노력한 그 모든 것들이
결국엔 이해받지 못하고 끝나버렸다.
사랑받고 싶어서 그토록 노력한 그 모든 것들이
결국엔 인정받지 못하고 끝나버렸다.
아니, 이제 노력하지 않을래.
밝고 명랑하고 긍정적이던 나라는 세계는 서버종료다.
재미없는 게임을 추억하는 건 현재를 낭비하는 짓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