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905 6차 교육과정 세대

초등학생 때 배운 게 전부일지도.

by Noname

공교육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나는 우리나라 공교육 커리큘럼을 지지하는 입장이라고 말한다.

내가 실생활에서 활용하는 상식은 어쩌면 초등학생 때 배운 게 전부일지도 모른다.


아마 초등학생 때 배운 지식으로 어떻게 겨우겨우 살아온 건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교육 커리큘럼을 지지하는 건,

그 어렴풋한 기억으로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조합해냈고, 그 어렴풋한 기억으로 분갈이도 하고, 실생활을 유지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최대한 많은 것을 접해보아야, 그중에서 본인이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아내고, 그중에서 재미있는 것을 찾아내고, 그중 몇몇 것들을 종합하여 뭔가 새로운 걸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우리 아빠는 국민학교 교육만 받았다. 공부하기 싫어서 중학교를 안 갔다고 하셨다.

우리 엄마 역시 국민학교 교육만 받았는데, 집안의 맞이라서 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본인은 학업을 포기해야 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작은 시골마을에서 어린 시절부터 책을 좋아하고, 혼자서 곧잘 공부를 해서 좋은 성적을 받는 나를 대놓고는 아니지만, 아주 은근히 자랑스러워하셨다.


오죽했으면, 어린아이에게 네가 똑똑하니 동생들 이름을 지으라고 하셨을까.


지금은 그냥 평범한 사람이지만 그래도 우리 부모님에겐 똑똑한 딸이었나 보다.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 책을 좋아하는 나를 위해 읍내에 나갈 때면 꼭 서점에 들러 책을 사주셨다.


방문 책 판매가 유행했던 당시, 그래도 뭐하나 사줘야 할 것 같으셨는지, 혹은 내가 졸랐는지 알 수 없지만

집에는 '과학 학습만화'가 60권이 있었다. 난 그 책을 보고 또 보고, 수도 없이 봤다.


초등학생 때, 도서관에서 제일 좋아했던 책은 '27세기의 모험'과 '정주영'회장님 자서전이었다.


'27세기의 모험'은 여러 번 빌려보고 모자라서 책을 사서 또 봤었다.


초등학생 때, 나만의 노트를 만들어서 '내셔널지오그래픽'과 '과학다큐', '과학 학습만화'에서 본 내용들을 요약해두곤 했었다.


언젠가는 학교에서 '충효예'에 대한 외부강의를 받은 적이 있는데, 그 내용을 일기장에 정리하고, 선생님한테 내용이 맞는지, 무슨 의미인지 묻기도 했었다.


3학년 때부터는 시골길을 오고 가며 생각했던 내용들을 시로 쓰곤 했었다.

나만의 시 노트도 있다.

선생님은 시가 너무 어른스러워 동시 대회에는 내보낼 수 없다고 하셨었다.


영어공부는 초등학교 5학년 시절, 중학교에 다니는 친척들이 내 가방을 보고 '니 코 복코'라고, 영어를 읽어주는 듯하면서 나를 놀렸다. 그날로 동네 언니에게 영어 사전을 구해와서 영어 공부를 했다.

영어도 그때 배운 게 전부였다.


오랜만에 만난 초/중/고 친구는 내게 너는 공부는 하나도 안 하고,

만화책만 보다가 그래도 어떻게 대학은 서울로 가서 너무 신기했다고 했다.


그래도 '독학 국사'는 재밌어서 매일 봤었다.

고등학생 때, 열혈 전교조 국사 선생님이 계셨는데, 성함이 '최영'선생님이셨다. 선생님은 최영 장군님 이야기를 하시며 열변을 토하곤 하셨는데, 그 열정과 정의감에 불타는 모습에 매료되어 국사만은 수업을 제대로 듣고, '독학 국사'를 매일 봤었다.


수학은.. 초등학생 때, 한 문제에 집중해서 풀릴 때까지 다음 문제로 넘어가지 않는 습성 때문에 과학경시대회에 보내주지 않는 선생님이 야속해서인지 중학교 이후로는 공부를 안 했다. 어리석게도 그랬다.


고등학교 수학선생님의 변태적인 발언을 듣고는 그 길로, 수업 시간에 아예 들어가질 않았었다.

내신이 중요하다며 시험문제를 다 짚어주던 그때 그 선생님의 희끄무레하고, 음흉했던 미소가 기억에 남아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반 꼴찌를 했었다. 우리 반 평균 다 깎아 먹었다며 어찌나 욕을 먹었는지 ㅎㅎㅎ



중고등학생 때, 만화책 안 보고, 학교 공부를 열심히 했더라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있었을까?

아마, 그럼 내가 아닐 수도 있다.



공부를 하는 목적과 의미를 21살에 찾았다.

그때부터는 열심히 공부했지만, 남들보다 적어도 10년 이상 뒤처져있거나, 10년 치의 지식이 없는 탓에

이 나이를 먹고도 계속 공부를 한다고, 우스갯소리를 하지만


어쩌겠나, 이게 내 삶의 모습인걸

배운건 초등학생 때 배운 게 전부다.



인사를 잘합시다.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맙시다.

공중도덕을 잘 지킵시다.


뭐, 이런 사람도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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