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904, 35살이 되면...

산에 들어갔다가 나온 이유(feat. 정신병자)

by Noname

초등학생 시절부터, 어떻게 하면 아프지 않게 죽을 수 있을까 고민을 했던 나는

백합 향에 독소가 있다는 이야기를 주워듣고, 방 안을 새하얀 백합으로 가득 채우고 죽는 상상을 많이 했다.

그 후로는 스위스 안락사를 자주 찾아보곤 했다. 돈도 딱 그만큼만 모았었고...


제발, 죽음만은 내가 선택할 수 있었으면.. 하는 오만한 마음이었던 것 같다.

물론, 탄생이 그렇게까지 불행했던 건 아니다.

단지, 어느 날 갑자기 남동생이 죽었기 때문에, 적어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슬프지 않게, 죽음을 예고하고 준비할 수 있도록, 그렇게 죽고 싶었을 뿐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뒤로 내가 사랑하는 외할머니와 아버지는 암으로 돌아가셨다.

외할머니는 한 달이라는 시간을 내게 주었고,

아버지는 6개월을 남겨두셨다가, 버티고 버텨 5년을 더 살다 가셨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분명, 내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다고 해도, 칠칠치 못하게 누군가 한 명쯤 나의 죽음을 자신의 탓으로 돌릴 누군가가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그런 것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생각해낸 계략이 있었다.


바로, 서른다섯 살이 되면 스님이 된다던가, 혹은 아프리카를 떠돌며 봉사활동을 한다던가 하는 거였다.


최소한, 현실에서 부대끼지 않고, 그 누구에게도 닿지 않으면, 그 누구의 탓도 아니고

그동안 생긴 거리감에 치명적으로 슬퍼할 만한 사람이 없을 거라는 묘수였다.


그리고, 정말 35살에 나는 대둔산으로 들어갔다.

스님이 된 건 아니었고, 과학명상센터에서 운영하는 몸치유센터에 영원히 머물 작정이었다.


매일 쑥뜸을 뜨고, 대둔산 자락을 1시간가량 오르내리고, 온천욕을 하고, 명상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시설관리, SNS 홍보, 회원관리, 주방일 등 기타 허드렛일)을 하면서 '하심', '하심'하였다.


어느 날, 주방일을 제대로 전달 받지 못해서 실수를 했는데,

거기 계신 분이 내게 '넌 진짜 정신병자 또라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그 순간, 깨달았다.

나는 정말 정신병자 또라이가 맞았다.


다른 사람들이 슬퍼할까 봐, 내 죽음에 죄책감을 갖을까 봐 배려하는 척하면서

사실은 또다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까 봐, 내가 그 사람을 위해서 해준 게 너무 없어서, 혹은 그 사람이 죽기 전 모진 말 한마디라고 내뱉었는데 돌이킬 수 없어질까 봐 지레 겁먹고, 사람들을 피해 도망쳤던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해서 세상에 도움을 주기는 커녕, 당근 하나 제대로 못 썬다고 욕이나 먹고 있었다. 이런 미움이 어디있나.


7살, 남동생이 죽은 그 겨울부터 나는 쭉 그렇게 정신병자로 살아왔었다.


아주 이기적으로, 다시는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


초등학생 때 읽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과 '어린 왕자', 중학교 1학년 천상병 시인의 '아름다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시집과 고등학교 1학년부터 쭉, 법정스님의 '무소유', 2012년 박노해 시인의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그리고, 이태석 신부님, 여기에 로맹 가리는 꼭 포함해야겠다.


내 정신세계를 지탱해주신 내 인생 멘토님들 이시다.

그중 박노해 교장선생님은 현존하시는 유일한 분이시다.


사람이, 자신이 속한 환경을 선택할 수 있는 이 시대에, 자신을 희생하는 길을 선택하는 일이 몇이나 될까.


아프리카에 갔다 돌아와서 느낀 건, 그거였다.

나는 그저 죄책감에 끄달려 그 먼 아프리카에서 스스로를 학대하며 괴롭혔다는 것.


이제 그 모든 정신병자와 자기학 대범을 인정하고, 깨달았다.

이제는 내가 하는 생각과 행동이 어디서 발원된 것인지를 알고 있으니, 그저 인지하고, 옳으면 행할 뿐이다.


진정으로 내가 누구인지, 내가 찾는 길이 무엇인지를 알아내야 하는 시기가 왔다.


사실 35살 이후의 인생은 세상에 진 빚을 갚기 위해 봉사를 하기로 했었다.


이제 곧 40살이다.

감정이나 경험에 끄달려 스스로를 몰아세우지 말고,

정말로 진실로 나를 위해서 내가 원하는 삶을 찾아야 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마흔-905 6차 교육과정 세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