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나는 박스를 버릴 때, 테이프를 다 뜯어내고 박스를 고이 접어서 버리곤 했다.
그때 친구가 말했다.
그냥 버려, 힘들게 왜 그래?
그때 당시에는 ‘나 하나라도 이렇게 버리면 폐지 주우시는 분들이 편하잖아.’
라고 말했는데
정말 편한 건 내 마음이었지, 과연 그분들이 편한 걸 바라고 했던 행동일까 싶었다.
세상 일에 대해서 쉽게 말하는 것처럼 보이는 ‘그냥 해’, ‘그냥 살아’ 이 말은 진리였다.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고
머리 굴리지 말고, 앞서 나가지 말고, 뒤돌아보지 말고
그저, 지금, 이 순간에 주어진 것을 ‘그냥’ 받아들이고 ‘그냥’ 하면 된다.
눈물이 나면 그냥 울고
화가 나면 그냥 화도 내어보고
웃음이 나면 그냥 웃고
힘든 상황이 오면 그냥 힘들구나 하고
어려운 일이 오면 어려운 일이 왔구나 그냥 하고
할 수 있는 만큼 받아들일 수 있는 만큼
일이 잘 안 되면 잘 안되고 있다는 걸 그냥 인정하고
내 능력 밖이면 나는 이만큼 밖엔 못하는구나 그냥 받아들이고
아이러니한 건지 그것이 순리인지는 모르지만
그냥, 무심하게 하다 보면
겪게 될 일을 겪고
하게 될 일을 하게 되고
삶을 살게 되고
모든 게 그냥 살면 되는 거였다는 걸
‘그냥’ 에고가 작용하지 않는 무심의 상태
관념도 집착도 없는 순수의 상태
삶은 그냥 살면 되는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