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받으시는 분 롤이 아닌건 알지만
언젠가부터였다.
정확하게 매월 4일이면 일정 금액이 소액 결제로 나가고 있었다.
워낙 카카오나 네이버에서 친구들에게 선물을 자주 보내는 편이라 그 중 하나려니했다.
그게 한 6번 이상 같은 날짜 같은 금액이 쌓이니까 이게 대체 뭐지 싶어서 내역을 찾아봤다.
카드내역에는 결제대행사 영어 스펠링 3자만 찍혀있었고,
결제와 관련된 메일이 잘 쓰지 않는 메일 계정으로 보내져있었으나,
역시 메일 제목에도 결제대행사 '영어 스펠링 3자 - 결제내역'
라고만 나와 있었다.
어렵게 어렵게 매출 전표를 통해서 결제의 근원지를 알아보니 a*****였다.
회사에서 뭔가 하다가 무료 버전이 그대로 넘어가 결제가 된 것으로 파악했다.
아니, 아무리 외국계라고 해도 너무 불친절한데 싶었다.
기획자로 일하던 시절, 나의 기획 철칙 중 하나가
'고객 센터로 걸려오는 전화를 최소한으로 줄인다.' 였다.
웹기획이던, 서비스기획이던, 교육기획이던, 사업기획이던
내 스스로 정한 핵심성과지표는 사람들이 물어볼 건덕지를 주지 않는 것.
그 다음은 상사나 타부서, 개발자나 디자이너, 퍼블리셔 누구든 문서에 있는 내용을 물어보게 하지 않는 것.
질문이 들어오는 순간 내가 잘못한거다.
고객센터와 협업을 했던 경험이 많기도하고,
그래야 내가 편하기도 하고, 완벽주의가 있기도하고
여러 이유에서 였지만 일이 즐거우려면 소통이 중요한데
그 소통이 잘 된 다는 건, 구두로 묻지 않아도 한번에 이해하기 쉬워야하는게 핵심이니까.
여튼, 그래서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역시나 정책과 방침, 원칙, 고객응대매뉴얼 이야기가 나왔다.
"네 맞죠, 외국계라서 더 그럴 수 있는데, 이건 이용하는 고객 입장에서 홈페이지 상에 나와있는 안내를 충분히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메일이나 결제 내역 자체에서도 단순히 결제대행사 명만 노출이 되어서는 인지가 불가능하니까요."
"물론, 전화받으시는 분께서 제 이야기를 들어주시는 것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으신 건 알고 있지만, 분명 이런 전화를 꽤 많이 받으실테고, 고객들이 조용히 이야기하는게 아니니까 힘드실거에요. 그러니까 제 케이스를 고객 불만으로 접수하시구요."
여기까지 했으면 그냥 진상고객이다.
그래도 나는 이 분야에서 10년을 일했던 사람인데 불만을 이야기했으면 당연히 대응방안을 이야기 해줘야지..
"전화받으시는 분께서 직접하실 수 있는 일은 아닐거에요. 담당하는 쪽에 두가지 부분 개선 방안을 전달해주시면 될거에요. 첫번째로는 소비자들이 잘 인지할 수 없는 정책이나 기억도 못하는 홈페이지 안내 문구 말고, 소비자 이메일 계정을 모두 접수 받아 진행이 되니까, 그 과정에서 이메일을 발송하는 방식. 이런 시스템이 구현하기 어렵다는건 소비자가 이해할 부분은 아니거든요. 저도 IT에서 일하지만 그걸 구현하기 어려운것도 아니구요. 하지만 만약 어렵다면 두번째로 결제대행사 측하고의 계약관계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는 모르지만 영업측이나 계약 담당자 측에서 결제대행사명3자만 나오게 하지 않고, 결제대행사명 옆에 어디서 결제가 되었는지 노출되도록 요청사항을 변경하는 건 가능할거에요. 요즘 타 결제대행사를 보면 그런식으로 처리를 하거든요."
아무리 정책이 잘 나와있고, 명시를 해둬봤자,
결제 이후 순간에 소비자는 당시의 홈페이지 내용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심지어 해당 프로그램을 사용하지 않는 나같은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
특정 목적에 의해 한번 접근하고, 목적 달성 후에는 굳이 추가로 살펴보지 않는다.
어떤 강조나, 여러번 안내되지 않은 유의사항 문구는 그냥 장식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특히나 결제가 연계되어있는 경우,
결제 버튼 위에 '경고, 00일 이전에 취소하지 않으면 매달 금액 결제됨!!!!'이라고 도배를 해놔도,
사람들은 몰랐다며 한달에 5통 정도는 전화가 온다에 뭘 걸면... 되려나.
그게 소비자만 그런게 아니라, 개발자도 그렇고, 디자이너도 그렇고, 디스크립션이나 정책을 명확하게 다 읽어보는 경우가 드물달까.
게다 요즘처럼 사용자 경험 수준이 높아지고 있는데, 언제까지 소비자탓만 하다간 그 기업 이미지가 깎일 수 있다.
일은 잘 해결됐고, 얼마전 받아본 이메일 제목과 메일 본문에는 구매상점정보까지 친절하게 노출되어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이런 건으로 걸려오는 대부분의 어노잉콜이 절반 이하로 줄어들고, 고객센터 분들의 감정 노동도 줄고, 부득이하게 환불을 해주느라 복잡하게 꼬인 회계처리도 줄고, 해피엔딩이 되지 않을까.
- 어노잉콜은 어노잉오렌지를 떠올리며 방금 만든 말입니다^^;;;; 업계용어아님.. 주의..
내 경험상으론 보통 그랬다. 요즘엔 AI콜센터에서 어노잉콜을 처리해서 고객센터분들의 감정노동이 많이 줄었다고 한다. 다들 귀한 분들인데, 기획을 하면서 고객 최접점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고객의 편의만이 아니라, 나와 함께 이 일을 잘 되게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행복해야 일이 잘 된다는 걸
요즘엔 다들 알고 있겠지. 게다 이 모두가 고객인데.
정책만 만들어 놓고, 우리 정책이다. 소비자 니가 인지 못했잖아.
하고 공감 안 해주다간 대체제 한번 터지는 날 주가 폭락하는 세상이잖아여...
소비자님께서 인지 못하게 만든 제 잘못이져...
물론 인지 못한 내 과실이긴하다
말이 그렇다는 거다..
상담해주신 분께서 전화를 끊을 무렵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불편하셨을텐데 친절하게 상담 진행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 제가 드릴 말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