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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803 적당히 좋아하기

가능하다

by Noname

초등학교 4학년 때, 성적이 제일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수학경시대회를 내보내주지 않는 선생님을 미워만하다가 선생님으로부터 날 보내지 않는 이유가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지나치게 끈기있게 풀릴때까지 푸는 습성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이런 습성을 바꾸기 위해서 서점에 가서 책을 골랐다.


"실패했을 땐 리셋버튼을 누르면 된다."라는 책이었는데,

어쩌면 내 생애 최초의 자기계발서였는지도 모른다.


뭐든지 순수하게 잘 흡수하는 특성 덕분에 그 책을 읽고, 나는 간단히 포기할 수 있는 방법을 배웠는데

그게 도가 지나쳐 그냥 아예 포기해버리는 쪽으로 잘못 바뀌었다.


몇번 내 생각대로 되지 않으면 뭐든 리셋을 누르고, 다시 새로운 걸 쌓아가는 버릇


예전 같았다면 아마, 상담선생님께서 내려놓기, 판단하지 않기 라는 과제를 주면 나는 그저 지금 하고 있는 모든걸 내던져버리고도 남았을거다.


아마 일도 관뒀을지 모른다. 실제로 그랬던 적도 있고.


하지만 선생님께서 주신 과제 중 '좋아하는 것을 하기'도 있었기 때문에

좋아하는걸 적절한 수준에서 즐기는 정도 할 수 있게 됐다.


그런데 사실 내가 좋아하는게 운동과 공부와 그림그리기, 책 읽기라서 그 중 어느것 하나에 지나치게 빠져버리는 상황이 되기도 하는게 문제였다.


그리고 강박적으로 일단위, 주단위, 월단위, 년단위, 5개년 단위 계획을 짜야만 마음 편해하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아프거나, 다치거나 하면 무력감에 툭 놓고 1-2주를 쉬어버리는 상황이 오곤 했던 것이다.


적절한 수준에서 나의 영혼이 원하는 정도로 몸의 상태를 고려하는 일은 자기관리의 핵심 기술이 아닐 수 없다.


주객전도가 일어나지 않게, 삶의 목적이 성취로 인한 도파민 분비가 아니라

매 순간 순간에 영혼이 원하는 것과 내 몸이 원하는 것을 적절히 버무려 균형잡힌 삶을 누리는 것


그러다보면 그 길이 맞는 길일때, 안정적인 상태로 충만감 속에 존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어딘가에 푹 빠져버리는 건, 그만큼 순수하고 멋진 일이지만 자칫 열정이라는 감정의 폭주가 될 수도 있다.

문득 도서관에서 순수 공부 시간 12시간을 채운 다음날, 되려 전날 그만큼 했기에 혹은 전날 가불해쓴 다음날의 집중력과 체력의 탕진으로 공부를 얼마 못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너는 잘할거야. 네가 아무것도 하지 않더라도 분명 잘할 테니까


했던 옛 친구의 말이 가슴 깊은 곳에서 떠오른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담대하게 매순간에 최선을 다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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