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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800 겉돌기는 끝났다.

소중해

by Noname

늘 친구들과 집단과 사회에서 겉도는 느낌이었다.


나는 적막한 숲속에 은둔한 철학가인 헨리 데이빗 소로우/법정스님을 동경했고,

세상을 방랑하는 '그리스인 조르바', 정신승리자인 낙천주의자 '캉디드', 영적 세계를 사유하는 '데미안'을

그리고, 무민마을의 '스너프킨'을 내 자신이 비유하고 싶었다.


고상한 베일을 쓰고, 다른 의미로 나는 도망을 치고 싶었다.


내 언제면 혼자, 친구도 없이, 기쁨과 슬픔도 없이 오직 만사가 꿈이라는 신성한 확신 하나에만 의지한 채 고독에 들 수 있을까? 언제면 욕망을 털고 누더기 하나만으로 산속에 묻힐 수 있을까? 언제면 내 육신은 단지 병이며 죄악이며 늙음이며 죽음이란 확신을 얻고 두려움 없이 숲으로 은거할 수 있을까? 언제면? 오, 언제면? - 그리스인 조르바


대학교 1학년 논술시간 첫 과제는 나 자신을 비유하여 소개하기 였다.


그때 나는 스스로를 '겉도는 동네 강아지'라고 비유했다가 지나치게 내 본질을 드러낸 그 표현에 수치심을 느끼고는 이내 '자연을 사랑하는 초록이'라는 가명으로 바꾸었다.


고독했다.

시골 초등학교 13명의 같은 반 친구들이 전부였고, 중학교도 86명이었던가

그나마 고등학교에서는 254명 정도의 여학생들이 있었고,

작은 사회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과 친했지만 내면적으로는 고독했다.


어쩌면 그때 새벽 3시 '고스트스테이션'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고독했던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유일하게 나와 생각의 결이 비슷한, 내가 진심으로 공감하고, 동의할 수 있는 유일한 출구였달까


시절인연이 닿아 함께 시간을 보낸 많은 사람들, 나를 매우 좋아해주었던 분들이 계셨음에도 나의 마음 자체가 겉도는 것에 너무나도 익숙해서 결국 그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래서 그 귀한 인연을 그 시절 밖에는 누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연이 닿고 닿아 다시금 함께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29살 무렵 아프리카로 떠난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거의 8년을 겉돌았다.


삶을 겉돌았고, 지인들을 겉돌았고, 친구들을 겉돌고, 가족과도 역시 겉돌았다.


매슬로우의 욕구 위계론에서 정중앙, 소속의 욕구가 결핍되어 있던 나는

소속이 가져올 수많은 두려움과 불안을 드디어 떨쳐냈다.


언니와 이야기하는 동안 위태로웠던 지난 삶들이 내 마음 속을 헤집고, 지나갔다.


"언니에게 정말 고마운게 내가 어두운 구렁에 숨어버릴 때마다, 언니가 나를 꺼내주었던 거야. 언니는 누군가가 어두운 구렁에 빠져있을때, 같이 구렁에 같이 빠지지 않고 그 사람을 꺼내어줄 수 있는 강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어. 그런 타인에게 다가가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거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한때에는 언니 조차도 어찌할 수 없었던 때가 있었다. 언니는 그때 나에 대해 좋지 않은 소식이 들려올까봐 걱정을 해주었었다고 한다.


'나 그때 너무 힘들었어. 내 성격상 다른 사람 앞에서 울지도 못하는데, 그렇다고 괜찮은 척 웃을 수가 없었어. 그래서 나는 누구도 만나지 못했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내 곁에 남아줘서 고마워.'


"그때, 내 가족들도 내가 잘못될 거라고, 예상을 하고 있었던 때였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니가 나에게 손을 뻗어주었던 날들, 내가 친구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던 기억들을 떠올려서 겨우, 겨우 정신을 차리고, 그 구렁에서 빠져나왔어. 언니가 지난 시간들을 함께해주지 않았었다면 나는 거기서 나오지 못했을거야."



누구에게도 도움을 구하지 못했다. 어린 시절 가장 믿는 이에게 도움을 요청하였을 때, 거절당하고, 되려 비난을 받은 기억에 갇혀 다시금 그런 아픔을 겪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책망하고, 스스로를 몰아세우는 것이 편했기 때문에


도움이 필요없던게 아니라, 도움을 받을 자격이라는게 스스로에게 허용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누군가는 본인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내게 화를 냈고, 누군가는 서운해했고, 누군가는 먼저 손을 내밀어주었다.


그 손을 내밀어준 지인들의 이야기이다.

그저 너는 그런 아이구나하며 네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순수한지 알기 때문에 나는 너를 기다려주었다고 한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내가 이말을 하기까지 17년을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준 그 마음이 너무도 고맙고,

용서를 받은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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