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739 이방인

단면

by Noname


어린 시절 읽은지 한참이 흐른 2014년 6월 어느날 이었다.

세네갈에서 봉사단원으로 활동하던 나는 막 #어린왕자 번역을 마치고 나서 마을의 아주 작은 서점에서 다시 이방인을 집어 들었다.


그 서점에 있던 책 중에 아는 책이 아마도 이방인이었기 때문이었고,


나는 그곳에서 이방이인이었기 때문이었다.


설레이는 마음으로 집에 와서 바로 번역을 시작했었다.


어린왕자는 처음 써보는 필기체와 처음 해보는 불어번역이라서 어색했지만


이방인을 시작할땐, 필기체도 어느 정도 익었었고, 번역도 두번째라서 좀더 유려하게 한국어로 문장을 만들 수 있는게 기뻤다.


동사도 많이 익혔던 터라 훨씬 깔끔하고, 빠른 속도로 번역을 할 수 있었다.


“오늘 엄마가 돌아가셨다.”


엄마의 장례식 장면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는 번역을 멈춰야했다.


아빠가 6개월도 채 사실 수 없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부랴부랴 한국으로 돌아왔다.

나는 몇날며칠을 잠을 자지 못한 상태였다.


한국에 와서 아빠를 뵙고, 다시 번역을 하려고 했었나보다.


끝내 #뫼르소 씨의 어머니 장례식을 마치지 못했다. 아빠의 장례식이 코앞에 다가온 딸의 심정을 헤아려볼때, 더 이상 이 책을 번역할 수가 없었으리라.


아마 그때 샀던 나의 이방인은 2019년 겨울 쯤 다른 책들과 함께 처분했던 것 같다. 더이상 이방인은 없다.


하지만 다시 읽게 되었다.


감정을 짐처럼 여기고, 감정의 표현을 수치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사회생활을 강요하면서 과연 누가 뫼르소에게 죄를 물을 수 있을까?


그저 지금 이 순간에 살아 있다는 것 만큼 담백한 삶은 없다.


응당 슬퍼해야할 곳에 슬퍼하라고?

감정마저 강요하는 세상이 나는 그저 무서울 뿐이다.


뫼르소에게 도덕도 인과도 없다고 하지만 그는 친구로부터 권총을 사용하는 것을 자제 시키고자 그 권총을 제 옷 주머니에 넣었을 뿐이고, 칼을 든 아랍인과 태양빛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자, 그를 쏘았을 뿐이다.


자유,


죽음을 목전에 둔 후에야 찾을 수 있던 그의 자유


감정의 폭발과 함께 깨어진 삶의 권태


‘죽음’의 의미를 명백하게 경험해본 사람은 그 삶을 보다 생동감있게 느끼게 된다.


삶이라는 단편적 경험으로는 결코 알 수 없다.


삶의 정수는 사멸의 체험으로 얻어지는 경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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