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738 관계에서의 진짜와 가짜

그런게 있을까

by Noname

인스타그램에 한 때, 진짜 친구와 가짜 친구를 구분하는 방법에 관한 글이 떠돌았다.


적잖이 공감하고, 적잖이 냉담했다.


그 구분과 판단은 순전히 주관적이며, 기억의 편린에 의한 지극히 편파적인 결정체로 판가름 난다.


사람은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믿고 싶은 대로 믿는다 하지 않던가.

내가 좋으면 한없이 좋게 보고, 내가 싫으면 한없이 싫게 보게 마련이다.


남의 연애사에 끼어들지 않는게 상책이다.

일단 그렇게 콩깍지가 씌여버리면 언제까지고 그 상대로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보고도 본게 아닌 상태가 이어지지 않던가.



얼마나 믿어주고, 얼마나 좋아하느냐는

얼마나 믿고 싶고, 얼마나 좋아하고 싶은지에 따라 달라진다.


그저 좋아보이던 것들이 어느 순간 모든게 싫어지기도 한다.

그게 사람 마음이다.


그래서 어느 정도 나이가 들고, 사람을 많이 겪다보면 감정보다는 이성으로 재단을 하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된 도리로서 그간의 정에 휘둘리기도 한다.

전 직장 대표님이 그랬고, 부대표님에 대한 나의 마음이 그랬다.


2018년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을 때,

시골 마을에서 옹기장이로 사셨던 우리 집에 근조 화환을 보내줄 곳은 거의 없었다.


휑한 장례식장을 떠올리며 아버지가 가시는 길에 꽃이라도 몇송이 더 뿌려 드리지 못하는 것 조차 죄송한 마음으로 시골에 내려갔었다.


그때, 그 당시 내게는 왕멘토님이셨던 전 직장 대표님께서 회사 이름으로 근조 화환을 보내주신 것을 보았다.

나는 지난 2년을 사실 그 고마운 마음을 보답하는 마음으로 어떻게든 그 분의 요구에 응하고자 했었다.


그 회사에 계시던 어떤 분께선

'일전에 프리랜서 하면서 그렇게 당하고도, 저 분이 왜 여기를 또 왔지?'

라고 넌지시 다른 분께 말씀을 하셨었다고 했다.


사실 기술사계에서 악명이 높았다. 기피대상이었달까.

알면서도 가서 나는 내가 할 도리를 다하고자 했다.

하지만 적정한 선에서 좋은 관계로 남기 위해선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다른 방법으로 나의 도리를 했어야 했다.

그렇게, 함께 한 시간이나 상대에 대한 고마움으로 도리를 다하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경우가 있다.


아주 사소한 일로도 나는 큰 부채감을 갖는 성향이어서 더더욱 그랬다.


함께 한 시간들이 설사 아름다웠다고 해도,

시절 인연이 다한 관계를 억지로 이어가면 가짜가 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 가짜는 내가 나임을 부정하게 유도하고, 자신의 구미에 맞는 사람이 되길 강제하는 경우가 많다.


이쯤되면 그것을 구분할 방도가 하나 생기는데,

누군가를 떠올리고, 나에게 있어 그 사람이 주는 전반적인 느낌을 보는 것이다.

이또한 매우 주관적이지만 이성적이고, 관습에 의해 학습된 대로 행했을 때의 결과가 좋지 않은 경우가 많은 걸 보면 오히려 직관에 의존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를일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쓴맛이라도, 그 사람 덕에 내가 성장했다면 진짜이다.

그러나 아무리 달콤하더라도, 그 사람을 떠올리면 석연찮은 구석들이 켜켜이 쌓여 덩어리가 지어있다면

그 즉시 그 덩어리들을 하나하나 해체해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석연치 않다면 나에게 있어 상대방은 가짜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얼마 남지 않은 내 삶을 존중하기 위해서 털어 내야할 것들은 털어내는 것이다.


아무리 털어내도 끈덕지게 달라붙어 한여름 습기 머금은 공기처럼

내 감정을 흐트러뜨린다면 우선은 내 감정을 점검하되 더 이상의 업을 이어가진 않는다.

함께 하여야할 시절이 끝났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는 나또한 그처럼 끈덕지게 불쾌감을 남기는 사람은 아닌지,

내 자신이 그 누군가에게 향기롭게 남을 수 있는 사람인지 통렬하게 되돌아 볼 일이다.


내가 더이상 순수한 마음으로 상대방을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없다면 이미 가짜일 뿐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마흔-739 이방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