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중하기
얼마전 싯타르타를 다시 읽었다.
작년 여름 한참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던 터라 이 역시 해마다 읽어야할 책이 되었다.
흔히들 이 세상에 태어나는 자는 자신만의 과제를 가지고 온다고 말한다.
그 과업을 카르마 혹은 윤회 또는 업보 라고 말한다.
윤회를 끊는것, 당장 습관적으로 형성된 삶의 방식.
그리고 그 삶의 방식으로 말미암은 결과물
흡사 그게 병이고, 죄악이고, 성공이고, 업적이며 위대한 발견일지라도
그 무엇을 하고, 그 무엇을 겪든 그저 각자의 과업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언젠가부터 누군가에게 조언이라거나 충고라는 걸 하지 않기 시작했다.
타인의 삶에 관여하지 않는것이 타인을 존중하는 최선의 방법이다.
요구하지 않은 조언을 떠밀며
타인의 삶에 관여할 거라면 적어도 자신의 그 과업에서 벗어난 행위에 스스로 책임을 져야한다.
그게 아무리 사소한 감정 한소끔이라도
그게 인연이다.
인연이 어려운 이유
얼마전까지만 해도, 내가 던진 말에 누군가가 아플까봐 혹은 내 의도와는 다르게 받아들일까봐
말을 해놓고도 노심초사했다.
그게 아닌데, 그렇게 오해하면 어쩌지? 하면서 혼자서 온갖 망상을 했더랬다.
그런데 문득, 어른이 된다는 건 반응에 책임을 지는거라는 말이 생각났다.
그래서 'responsibility' = respons + ability 라고.
물론 신중하게 말을 해야겠지만 이미 저지른 말이라면 주워담을 수 없다.
그러니 활이 활시위를 떠나듯 내 입에서 떠난 말은 그 결과를 책임질 수 있어야하고,
그 결과, 즉 상대방이 받아들인 그의 반응은 그 상대방의 몫이되 내게 어떤 방식으로 되돌아오든 받아들여야하는 것이다.
우선은 침묵하고, 최소한의 말을 하는게 가장 현명한 처사인 이유가 여기에 있겠지.
반응은 상대방의 몫이지만 그 결과는 겸허히 받아들여야한다.
그러니 애저녁에 말을 신중히 골라서 하거나 신경이 쓰일 말이라면 하지 않는게 나을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