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사람 간에는 적정한 거리가 필요하다고 한다 .
적정한 거리를 유지하기까지 어느 정도의 거리가 적정할지에 관해서는 가늠이 필요하다.
모든 관계를 이렇게까지 고민하려면 그것 또한 어려움이 될 수 있지만
너무도 다른 서로가 서로에게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과정이지 않을까.
포용할 수 있는 거리는 허용할 수 있는 상처의 크기와 같다.
가까운 사이는 그만큼의 사랑과 그 만큼의 미움이 같은 크기로 존재할 수 밖에 없다.
마냥 좋은 사이는 마냥 서로에게 맞춰줄 수 있는 사이일지 모른다.
나와 같은 사람은 나 밖엔 없으므로
상대를 고려하지 않고서는 누군가는 상대를 고려해서 맞춰주는 역할이 필요하다.
내가 편하다면 상대방이 불편한 거라는 언니의 말이 떠올랐다.
옛날 어떤 글에서 한 부부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는데
부인은 치킨 다리를 좋아해서 남편에게 평생 치킨 다리를 양보했고, 남편은 가슴살을 좋아해서 부인에게 평생 가슴살을 양보했다는 이야기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상대를 위하는 마음이 중요한 것
적절히 측정해 둔 거리가 변하기도 한다.
우리는 적절히 행동도 사고방식도 바뀌고, 관계에 따라 상황에 따라 무한히 변동가능한 존재이니까
어느 시점이 변화불가능한 감동으로 남기 위한 필요조건은 어느 시점에서든 그 감동을 소중히 간직할 수 있는 마음이다.
그 마음의 크기,
작은 배려에서부터 큰 감동까지 다양한 모양과 크기가 상대방에게 전해지는 정도
그 정도는 각자가 가지고 있는 소위 킬링포인트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오래된 관계일 수록 그 정도를 파악하기가 어려워진다.
나를 기억할까, 내가 상대방에게 어느 정도의 의미와 기쁨을 줬을까
즉, 긴 공백에도 불구하고 다가가도 될까
내가 아직 상대방의 바운더리에 속할 수 있을까
반대로 나는 아직 상대방을 나의 바운더리에 포용하고 있는걸까
복잡하게 생각할 수록 어려워진다.
그래서 그 거리감을 깨는 방법은
다가가 보는 거다.
진심으로,
내가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으로
결국 배려심의 깊이에 따라 관계는 다시 이어지기도 하고, 화들짝 놀라 뒷걸음질치는 상대방의 반응에 놀라 나 역시 뒤로 물러서기도 하는것 같다.